이해찬 전 총리 별세…민주화 운동·진보 원로

기사등록 2026/01/25 17:45:00

최종수정 2026/01/25 17:56:49

'선거 제왕' 이해찬 7전 7승…김대중·노무현 정부 요직 역임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평통사무처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5.11.03. dahora83@newsis.com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평통사무처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5.11.0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정금민 기자 = 74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국회의원과 주요 공직을 두루 거친 정치계 원로로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서왔다.

1952년 충남 청양 출신의 이 전 총리는 집안의 지원으로 일찍 상경해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에는 이과·문과를 번갈아가며 두 번 합격했다. 처음에는 서울공대 섬유공학과로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한 뒤 이듬해 사회학과로 재입학했다.

이후 1972년 10월 유신 당시 서울대생 신분으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돼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정치권과의 인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이던 이 전 총리는 김대중 대선 후보를 지지하며 사실상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초선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서울 관악을에서 17대 총선까지 내리 지역구 의원을 지냈다. 19~20대 국회에서는 세종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내며 7선 고지를 밟았다. 18대 총선 불출마를 제외하면, 총선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는 '선거의 제왕'이다.

국회에서는 노동·교육 분야 입법에 주력해왔고, 1988년 광주청문회 당시 '송곳 질문'으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청문회 스타' 별명을 얻었다.
 
정부 요직도 역임하며 친노(親盧·친노무현) 좌장으로 자리매김 했다. 1995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내며 조순 서울시장과 함께 행정 경험을 쌓았고, 김대중정부 교육부장관, 노무현정부 국무총리를 지냈다. 총리 재임 당시 노 전 대통령과 역할을 분담하며 책임총리로 활약했다.

노무현정부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총리·비서실장' 관계로 신임을 쌓았다. 특히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과 언성을 높이며 공방을 주고받는 등 '강성 총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당 대표도 지냈다. 2012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한명숙 지도부가 19대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이 전 총리가 당 대표 지휘봉을 잡았다. 다만 18대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당 대표 대행을 맡긴 뒤 물러났다.

이후 문재인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약하며 문재인 정권 창출의 공을 세웠다. 2018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도 지냈다.

이재명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친노·친문(친문재인)계 좌장격이던 이 전 총리는 굵직한 선거 때마다 이 대통령을 지원하며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2021년 5월 출범한 이 대통령 지지모임 '민주평화광장' 역시 이 전 총리의 대표적 지지 모임인 '광장'이 모태가 됐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이던 지난 2024년 4월 총선서는 상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지난해부터는 이 대통령이 장관급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하면서 통일 정책 자문 활동을 맡는 등 말년까지 정치에 인연을 놓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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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총리 별세…민주화 운동·진보 원로

기사등록 2026/01/25 17:45:00 최초수정 2026/01/25 17: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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