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의학은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을까? 현대 의학은 과연 여성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는가?
신간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생각의힘)은 의학이 여성의 몸과 고통을 어떻게 오진하고, 축소하며, 체계적으로 왜곡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임상의이자 의학 연구자인 저자 엘리자베스 코멘은 종양내과 전문의로서 의료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환자들의 사례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서구의학은 여성의 신체적 고통과 증상을 객관적으로 탐구하기보다는 '심리적'이거나 '히스테리적'인 문제로, "그녀의 머릿속 문제(All in her head)"로 취급해 왔다.
이 책은 골격계·근육계·생식계 등 인체의 11개 기관계에 따라 질환과 사례들을 구성해 여성의 증상이 '과장', '기분', '불안' 등 심인성으로 치부돼 온 과정을 낱낱이 드러내고, 그 결과가 오진과 불필요한 시술,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결정으로 이어졌음을 밝힌다.
또한 의학계와 과학계마저 '과학적 태도'를 잃고 사회적 통념을 답습했을 때 어떤 비극이 반복됐는지, 반대로 통념에서 벗어났던 소수가 어떻게 발전을 이끌었는지를 알린다.
2022년 생물인류학자 캐서린 리는 연구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이 여성 접종자에게 높은 확률로 돌발 출혈·월경 과다·월경 불순을 초래함을 증명했다. 이처럼 의학 및 과학계의 소수 연구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실제로 연구를 시작하기 전까지, 백신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은 미국 공중보건 당국과 대중매체를 통해 "거짓말쟁이", "음모론자" 취급을 받아야 했다.
저자는 여성의 몸과 고통을 폄하한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의학사 속에 자리 잡은 성 편향적 지식의 폭력을 독자들에게 직시하게 하며, 여성의 몸을 존중하며 이해하는 일이 곧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많은 여성이 오랜 편견의 역사에 고통받았으며, 이와 같은 일들이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의료현장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고통으로 얼룩진 역사적 사례들로서 정식으로 고발한다.
2017년 첫 아이를 출산 후 폐색전증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의 사례는 여성 환자의 통증을 대하는 의료계의 인식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당시 기침이 너무 심해 제왕절개 봉합선이 터질 정도였으나, 폐 CT를 찍어달라는 윌리엄스의 간청에도 의료진은 "그냥 좀 진정하라" "약을 너무 많이 드셔서 헛소리를 하는 것 같다"며 환자 말을 듣지 않고 심리적 문제로 오진했으나 결국 폐에서 혈전이 발견된 것이다.
"오히려 의사들 자신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다. 1960년에 비로소 여성 장거리 주자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된 반면, 의학계는 여성의 신체가 장거리 달리기에 부적합하고 자궁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믿음을 1970년대까지 계속 붙들고 있었다." (142쪽)
의학사와 과학 저널리즘, 젠더 이슈를 교차시키며 오늘날 의료 시스템의 맹점을 현재진행형 문제로 제기하는 이 책은, 질병 문제가 사회적 권력에 얽힌 문제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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