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스타인 손끝에서 하나의 미학이 된 리스트와 브람스 [객석에서]

기사등록 2025/12/24 16:57:42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첫 내한 리사이틀

'기교' 리스트-'구조미' 브람스…대조 대신 '융합' 택해

매순간 음악의 본질 탐구…'가장 바쁜 연주자'인 이유

[서울=뉴시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키릴 게르스타인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Rowan Lee) 2025.12.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키릴 게르스타인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Rowan Lee) 2025.12.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리스트와 브람스. 낭만주의 안에서도 종종 대비되는 두 작곡가를 키릴 게르스타인(46)은 하나의 미학으로 엮어냈다.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게르스타인의 첫 내한 단독 리사이틀은 기교의 과시보다 작품의 성격과 미학을 일관되게 해석하는 태도가 두드러진 무대였다.

그는 올해 서울시향,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와의 협연으로 이미 두차례 내한한 바 있다. 한 달 여 만에 다시 오른 무대에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이유를 연주 자체로 설득했다.

리스트와 브람스는 미학적 지향이 뚜렷하게 갈린다.

기교와 표제음악(음악 외적 대상을 묘사하는 음악)의 리스트, 구조와 절대음악(음악 본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음악)의 브람스를 게르스타인은 대비시키지 않고 미학적 연속선 위에서 풀어냈다.

전반부는 리스트였다.  짙은 회색의 니트와 검은 재킷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관객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후  '세 개의 페트라르카의 소네트'를 시작했다. 화려함보다는 서정에 무게를 두고 모든 음을 성실히 짚어가며 시의 운율처럼 템포를 유연하게 조절했다. 재즈와 클래식을 함께 수학한 그의 음악적 호흡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연주였다.

 이어진 '순례의 해: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중 '단테를 읽고: 소나타풍의 환상곡'에서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강한 타건과 함께 웅장한 선율이 펼쳐졌지만, 몸짓은 끝까지 절제돼 있었다. 저음이 울릴 때마다 금관 악기를 연상케할 만큼 밀도 있는 소리가 홀을 채웠다. 팔의 힘으로 눌러치는 연주가 아니라, 온몸의 균형을 건반에 실어 만들어낸 음향이었다.
[서울=뉴시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키릴 게르스타인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Rowan Lee) 2025.12.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키릴 게르스타인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Rowan Lee) 2025.12.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2부는 브람스 곡으로 채워졌다. 스케르초 내림마단조에서 게르스타인은 복잡한 리듬과 대위적 구조를 명료하게 정리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박자와 한 주제에서 파생되는 음들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힘은 실렸지만 무겁지 않았다. 브람스 특유의 구조미가 선명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마지막 곡인 피아노 소나타 3번에서는 구조 위에 서정이 더해졌다. 감정에 과도하게 기울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정서를 드러냈고, 악보 속 질서를 끝까지 읽어내려는 태도가 일관되게 유지됐다. 매 순간 음악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그의 연주 철학이 가장 뚜렷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앙코르는 슈만의 '꽃의 곡', 쇼팽의 왈츠 5번, 오스카 르방의 'Blame It On My Youth' 등 세 곡이 이어졌. 슈만의 부드러운 선율은 이날 무대를 차분히 정리하며 연말의 온기를 남겼다.

게르스타인은 기교와 서정, 표제음악과 절대음악이라는 낭만주의의 양 극단을 자신의 언어로 조화롭게 묶어냈다. 대비를 강조하기보다 '통합'을 택한 이번 리사이틀은 왜 그가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지를 증명한 무대였다.
[서울=뉴시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키릴 게르스타인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Rowan Lee) 2025.12.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키릴 게르스타인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사진=마스트미디어 제공 ⓒRowan Lee) 2025.12.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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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스타인 손끝에서 하나의 미학이 된 리스트와 브람스 [객석에서]

기사등록 2025/12/24 16:57:42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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