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지차 슬롯머신, 해외선 진화하는데 강원랜드는 '스톱'
"슬롯머신은 카지노의 얼굴…인기머신 도입 제도적 보완 시급"

필리핀 마닐라의 글로벌 카지노에 설치된 최신 기종 '다이나마이트' 슬롯머신.(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정선=뉴시스]홍춘봉 기자 = "릴은 회전하지만, 이야기는 멈췄다"
강원랜드 카지노 슬롯머신 앞에서 고객이 기대할 수 있는 변화는 여기까지다.
반면 동남아 카지노에서는 잭팟이 터지기 전부터 이미 게임이 시작된다. 폭발 직전의 다이너마이트, 질주하는 황금열차, 구름을 가르는 용의 비상까지…슬롯머신은 더 이상 확률 장비가 아니라 하나의 '무대'다.
이달 10~1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G2E ASIA' 게임쇼는 그 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글로벌 슬롯 제조사들이 공개한 신제품들은 이미 필리핀 주요 카지노에 설치돼 고객을 맞고 있다.
반면 국내 유일 내국인출입 강원랜드 고객들은 여전히 "예전에 보던 그 머신" 앞에 줄을 서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와 마카오의 슬롯존은 전혀 다른 세계다.
다이너마이트 폭발 직전의 긴장 속에 금은보화를 실은 열차 세 대가 질주하고, 조선시대 엽전을 연상시키는 '코인 트리오'는 잉어·용·호랑이 문양으로 부의 상징을 극대화한다. '드래곤 트리오'에서는 형이상학적 꽃 위로 용이 구름을 타고 오르며 잭팟이 예정된 듯한 착각을 만든다.
여전사와 염라대왕의 대결, 원숭이들의 익살스러운 퍼포먼스, 황제가 직접 잭팟을 선포하는 '머니 공' 머신까지 해외 카지노의 슬롯머신은 확률 게임을 넘어 서사와 연출이 설계된 엔터테인먼트로 진화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분명하다. 잭팟 액수보다 ▲몰입형 그래픽 ▲이야기 구조 ▲상징적 이미지 ▲보너스 진입 연출이 고객 선택을 좌우한다. 고객은 베팅을 하지만 실제로는 '경험'을 소비한다.

필리핀 마닐라의 한 카지노에 설치된 중국 황제가 친히 잭팟을 선포하는 형상의 '머니공' 슬롯머신.(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이 흐름은 강원랜드 고객들 역시 체감하고 있다. 실시간 잭팟 앱 '잡수다'가 슬롯·테이블 이용객 3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해외 인기 슬롯머신 도입 요구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IGT의 '버팔로', '골드 릴'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슬롯 등이 구체적으로 거론됐고, 고객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머신을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강원랜드의 현실은 정반대다. 전체 슬롯머신 1360대 가운데 절반 이상이 5년 이상 된 구형 모델이다. 매년 교체가 이뤄졌지만 고객 체감도는 낮다. 신제품을 만났다는 느낌보다 "또 비슷한 기계"라는 반응이 많다.
더 큰 문제는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왕서방', '드래곤88' 등 한때 인기를 끌었던 기종마저 부품 단종으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고객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머신은 없고, 익숙한 머신만 줄어든다"는 불만이 나온다.
"취향에 맞는 게임을 고르는 게 아니라, 그냥 빈자리를 찾는다"는 현재 강원랜드 슬롯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강원랜드도 변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제도다. 베팅 한도(2000원), 잭팟 상한(9억 9900만원), 기종 승인 절차 등 복합적인 규제가 신제품 도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 사이 동남아 카지노는 트렌드를 즉각 반영하며 고객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법이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베팅 한도·잭팟 상한의 단계적 현실화 ▲테마형·서사형 슬롯존 조성 ▲형식적 교체가 아닌 고객 참여형 기종 선정 등이 대표적이다.

필리핀 마닐라의 글로벌카지노에 최근 설치된 '엽전 트리오' 슬롯머신.(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슬롯머신은 단순한 수익 장비가 아니라 카지노의 얼굴"이라며 "신제품 도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 유지를 위한 최소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강원랜드 관계자는 "슬롯머신의 최대 베팅한도가 20년 이상 동결되면서 글로벌 업체들이 강원랜드 입찰참여를 외면하고 있다"며 "글로벌 인기머신 도입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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