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사진=민음사 제공) 2025.12.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2/19/NISI20251219_0002022988_web.jpg?rnd=20251219144148)
[서울=뉴시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사진=민음사 제공) 2025.12.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미움이 없어 분노가 없어 관심과 눈치도 없이 봄이 지나갔다 지나고 보니 봄이었다 올리브유로 비누 만들기만큼 쉽게 지나갔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중)
개인의 경험과 사건을 문학의 언어로 써 온 시인 김이듬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민음사)가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는 '화재'라는 재난적 경험 이후 쓰인 시들을 묶었다.
저자에게 지난봄은 유난히 추웠다. 올해 3월 발생한 경북 대형 산불로, 영덕에 있는 그의 집이 타버렸다. 당시 시인은 본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잿더미가 된 마을 사진을 공유하며 피해 현장을 전했다.
하루아침에 검게 그을린 삶의 터전. 통상 재난의 책임을 인간에게 환원하기 마련이지만 시인은 재난을 둘러싼 비난의 언어를 거부한다. 원망과 분노 대신 현실의 곁을 따라 사태를 받아들인다.
표제작에서 "나의 집은 황무지가 되었다 풀들이 불에 탔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나는 벽돌만 한 비누를 집어 던지지 않았다"며 이러한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작품 곳곳에서 반복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라는 구절은 저자가 현실을 대하는 태도다. 재난 이후 체념과 절망, 혐오로 기울지 않고 시인은 사건을 문학의 언어로 해석하며 현재를 기록한다.
"신이 나를 사랑해서 나를 이재민으로 만들어 주고 가설 건축물에 살게도 해 주시네요 시에 쓸 얘기가 쌀처럼 떨어질까 봐 파란만장 상상 초월 상황도 주시고요"('오지의 건축물')라며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한다.
그러나 시집은 역설적으로 언어의 부질없음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다.
"정작 집이 불타니 언어의 집이 사치 같았다 집이 불타고 나니 속이 없어졌다"('생활의 시')며 삶을 지탱해 주던 문학마저 덧없어지는 순간을 고백한다. 이에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저자는 "유머를 잃어버렸다"며 재난 이후 감정의 바닥을 가장 솔직한 언어로 드러낸다.
김이듬은 시·소설·산문 등을 넘나들며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전미번역상,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김춘수시문학상, 샤롯데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 국내외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국내 대표 문학 작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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