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후 실형 고작 8%…"합의만으로 감형 안 돼"

기사등록 2025/12/15 14:02:31

최종수정 2025/12/15 14:16:24

양형위원회 중대재해법 양형기준 관련 토론회

내년 1월 법 시행 4년…유죄 평균 징역 1년4월

"처벌불원 참작 등 원인…재발방지노력 살펴야"

[수원=뉴시스] 공장 화재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의 1심선고가 열린 23일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경기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9월 23일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아리셀 박순관 대표에게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사진=뉴시스DB). photo@newsis.com
[수원=뉴시스] 공장 화재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의 1심선고가 열린 23일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경기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9월 23일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아리셀 박순관 대표에게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사진=뉴시스DB).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현 기자 =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 4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사건은 고작 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있는 가운데 감형 기준인 '유족과의 합의'를 강화해 재발방지 조치 이행을 엄격히 봐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는 1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을 주제로 양형연구회 15차 심포지엄을 열고 이 같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범죄와 양형기준' 등을 논의했다.

주제 토론자 범선윤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월 법 시행 이후 올해 9월 말까지 총 65건의 기소건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23명이 숨진 아리셀 참사 등이 포함됐다.

법인이 아닌 자연인이 피고인인 70건 가운데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6건(8.57%)에 그쳤다. 나머지는 집행유예(87.14%)였다. 지난 9월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가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1심에서 징역 15년의 실형을 내린 게 최고다.

다만 징역형의 집행유예까지 포함해 분석하면 지금까지 선고된 총 67건의 평균 형량은 15.89개월로, 약 1년4개월 수준이다. 66건은 법에서 징역 1년 이상의 형을 정하고 있는 산업재해치사 혐의 사건이다.

범 부장판사는 낮은 실형 비율에 "유족과의 형사합의를 통해 유족이 법원에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사정이 주요 양형 요소로 참작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내 의사결정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기 마련이고 그 위험이나 비용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전가되는 경향이 있다"며 "생계에 타격을 입게 되는 유족의 입장에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경제적 이유로 형사합의에 응할 유인이 커지게 된다"고 짚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유족에게 지급하는 형사합의금 등 사후적 비용이 기업이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충실하고도 철저하게 이행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압도적으로 크지 않으면 기업은 여전히 안전에 투자하기보다는 사고처리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연구회 제15차 심포지엄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에서 범선윤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가 분석한 중대재해처벌법 선고내역 분석 결과. (자료=양형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연구회 제15차 심포지엄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에서 범선윤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가 분석한 중대재해처벌법 선고내역 분석 결과. (자료=양형위원회 제공). [email protected]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요소로 참작될 만한 '유족과의 합의'를 고려할 때 충실한 재발방지 조치를 이행했는지 여부를 함께 살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 부장판사는 "단순한 재발방지 노력이나 다짐만으로는 동일한 재해의 발생을 막을 수 없다"며 "적어도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당연한 의무로 규정한 것들은 모두 이행하는 수준이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유족과의 합의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과실' 역시도 제한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유죄판결 70건(피고인 수 기준) 중 38.6%인 27건이 피해자의 과실이 원인이라는 점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

범 부장판사는 "중대재해는 사업장 자체나 기업의 구조적 위험성과 근로자의 부주의한 행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며 "종사자가 작업 중 부주의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구조적 문제가 중대재해의 원인이니 단순 부주의 등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 만으로 유리한 양형을 하는 데 신중하자는 것이다.

토론자들도 이 같은 지적에 공감하는 반응이었다. 정지원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는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으로 인하여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킨 경우에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과는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판사는 "양형인자로서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공탁 포함)'만을 두는 경우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입법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유족과의 합의에 지나치게 큰 효과를 부여하기보다는 재발방지조치의 이행과 병행돼야 한다는 발표자의 견해에 찬성한다"고 주문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유족과의 합의에서 안전보건관리체계 개선, 위험성 평가 이력, 외부 전문가의 검증 등 재발 방지와 안전 시스템 개선으로 양형 중심축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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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시행 후 실형 고작 8%…"합의만으로 감형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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