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서 K1~2서 첫 개인전
눈·성기·항문·장기 '위계를 찢어버린 회화'
'Gore Deco' 회화 연작·드로잉, 동판화 등 45점 전시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과 K2에서 장파의 개인전 'Gore Deco'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25.12.00.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12/09/NISI20251209_0021090270_web.jpg?rnd=20251209131611)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과 K2에서 장파의 개인전 'Gore Deco'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25.12.0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한국 작가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장파(44·본명 장소연)의 회화는 익숙한 규범에서 과감히 탈주한다.
한국 회화가 오랫동안 외부 풍경·추상 자연·정서적 여백을 중심으로 미학을 구축해왔다면, 그는 정반대로 ‘육체의 내부’를 전면에 세운다.
장기, 구멍, 성적 이미지, 살덩이의 덩어감이 화면을 점령하는 이른바 ‘wet한 회화’-서구 표현주의나 라틴아메리카 바디 페인팅에서는 낯설지 않지만, 한국 미술사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핑크–살구–장기색으로 이어지는 층위는 해부학보다 더 해부학적이고, 감각보다 더 감각적이다. 장파는 피부를 벗기고 내부를 펼친 뒤, 그것을 곧장 우주의 지도처럼 확장한다. 화면 곳곳에 새겨진 ‘hole’, ‘love’, ‘origin of the world’ 같은 단어들은 몸의 입구·상처·섹슈얼리티·탄생의 출구·권력의 통로를 한데 엮는 기호다.
한국 여성 작가들에게 오랫동안 금기였던 감각을 그는 누구보다 먼저 열어젖힌다.
국제갤러리는 이 급진적 감각을 정면으로 포용하며, 9일 개인전 ‘Gore Deco’를 개막했다. K1·K2 전시 공간에서는 동명 회화 연작을 비롯해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약 45점이 공개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9일 장파 작가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5.12.09.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2/09/NISI20251209_0002014168_web.jpg?rnd=20251209165619)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9일 장파 작가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5.12.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시각은 가장 우의적인 감각… 그 위계를 찢고 싶었다”
장파는 자신의 미학적 세계관을 설명하며 철학자 조르주 바타이를 호출했다.
“바타이는 눈·성기·항문·장기처럼, 보통 위계가 매겨지는 기관들을 동일한 지평에서 다시 사유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저 역시 눈과 내장, 생식기 같은 기관들을 뒤섞어 하나의 연속된 현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의 위계를 해체하는 일이다.
시각과 비시각, 고귀함과 저속함, 숭고와 혐오-회화를 지배해온 이 모든 이분법은 그의 화면에서 조용하면서도 기습적으로 붕괴한다. 형상은 흔들리고, 감각의 장벽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뒤섞인 물질적 감각의 평면뿐이다.
장파 작가는?
초기부터 회화 구조와 몸의 언어를 동시에 탐구해온 그는 인천아트플랫폼(2020), 두산갤러리 뉴욕(2017), 소마미술관(2016), OCI 미술관(2011)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감각의 위계’를 뒤흔드는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견고히 구축해왔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2024),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24), 송은(2023), 아르코미술관(2023), 서울시립미술관(2015) 등 주요 기관의 그룹전에서 주목받았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며, ‘육체–감각–장식’이라는 세 축을 통해 동시대 회화의 감각 구조를 재편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과 K2에서 장파의 개인전 'Gore Deco'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제목 'Gore Deco'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신체와 정체성이 폭력적 구조에 놓이게 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동시에 ‘장식’이라는 개념이 내포한 위계적 함의에 주목한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인다.2025.12.00.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12/09/NISI20251209_0021090262_web.jpg?rnd=20251209131611)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과 K2에서 장파의 개인전 'Gore Deco'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제목 'Gore Deco'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신체와 정체성이 폭력적 구조에 놓이게 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동시에 ‘장식’이라는 개념이 내포한 위계적 함의에 주목한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인다.2025.12.00. [email protected]
K1-뒤집힌 삼각형, 내장이 걸린 십자가
십자가는 더 이상 영적 기호가 아니다. 내장의 질감으로 장식된 ‘여성화된 성물’로 변모한다.
마치 내장이 걸린 교회 안으로 들어선 듯한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벽면을 감싸는 실크스크린 벽화는 고대 건축의 프리즈를 연상시키며, 역사 속 여성 재현의 이미지사와 장식의 위계를 한 화면에 응축한다.
십자가 형태의 작품은 거의 ‘몸의 성상화(Iconification of Flesh)’에 가깝다.
구멍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세계가 처음 열리는 인터페이스, 존재가 통과해야 하는 문과 관문이다. 구원이 상징하던 구조와, 장기가 드러내는 존재의 조건은 장파의 화면에서 하나의 패턴으로 서로 뒤엉킨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과 K2에서 장파의 개인전 'Gore Deco'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제목 'Gore Deco'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신체와 정체성이 폭력적 구조에 놓이게 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동시에 ‘장식’이라는 개념이 내포한 위계적 함의에 주목한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인다.2025.12.00.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12/09/NISI20251209_0021090269_web.jpg?rnd=20251209131611)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과 K2에서 장파의 개인전 'Gore Deco'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제목 'Gore Deco'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신체와 정체성이 폭력적 구조에 놓이게 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동시에 ‘장식’이라는 개념이 내포한 위계적 함의에 주목한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인다.2025.12.00. [email protected]
K1 2층 해골보다 배경이 더 강하다…색채와 장식의 반란
이는 장파가 의도적으로 배경을 형상보다 앞세우는 전략이다.
금속 하드웨어, 머리카락, 스티커, 거즈 같은 비전통적 재료들이 캔버스에 부착되며 ‘고귀한 재료’와 ‘비천한 물질’의 구분은 여기서 무력화된다.
고통의 흔적은 장식이 되고, 상처는 문양이 된다. 이는 파괴가 아니라 압도적인 시각적 쾌감으로 전환된 반란이다.
K2에서는 여성혐오 이미지, 에밀리 디킨슨의 문장, 파편화된 신체가 한 장면에서 충돌한다.
눈, 입술, 항문, 상처… 이 전시의 핵심 구조는 ‘구멍(hole)’이다. 구멍은 통로이자 문지방, 기억의 입구이면서 몸의 취약성과 힘을 동시에 드러내는 존재론적 장치다.
여기서 몸은 더 이상 피해의 대상이 아니다. 고통은 장파의 손에서 유머·조롱·유희로 비틀리며 새로운 감각으로 재탄생한다. 그 웃음은 위로가 아니라 폭력적 질서에 생긴 균열이다.

국제갤러리 K2 1F 장파 개인전 《Gore Deco》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장파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2/09/NISI20251209_0002014182_web.gif?rnd=20251209170031)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장파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문담피'의 노골화에 저항
여기에 장파는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를 겨냥해 생산된 은어를 그대로 가져온다.
작품 제목 ‘학교 시간의 피어싱’도 그 연장선이다.
“댓글창에서 혐오 언어가 활활 타오르는 걸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반격’의 기분이 들어요. 20대 내내 그 언어를 실시간으로 겪으며 자랐으니까요.”
텍스트와 기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한 세대가 통과해온 감각의 지형도다.
“몸은 세계를 통과하는 장치”… 금기 이후의 회화
발달장애를 가진 오빠와 함께 성장하며 계급·성별·장애가 교차하는 폭력을 가족 단위에서 체감했다고도 전했다.
그의 회화 속 몸은 언제나 통과 중이다. 열리고, 해부되고, 뒤집히고, 다시 봉합된다. 파괴가 아니라 다시 태어나기 위한 해체다.

국제갤러리 K2 2F 장파 개인전 《Gore Deco》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장파의 회화가 결국 묻는 것
그것은 신체를 거쳐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는 포털에 가깝다.
여성 형상, 젠더 기호, 심장, 뱀, 지문, 작은 태양 같은 도상들은 하나의 거대한 '퀴어 바이오-신화(bio-myth)'로 결집한다.
살과 신화가 얽힌 장파의 그림은 인간이 얼마나 다층적 괴물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그 잔혹한 진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국제갤러리 K2 1F 장파 개인전 《Gore Deco》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위계를 찢어버린 회화’가 던지는 질문
어떤 감각이 더 고귀하고, 어떤 감각이 더 저급한가.
그 위계를 결정해 온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위계를 찢어버린 이후의 회화는 어떤 몸을, 어떤 세계를 그릴 수 있을까.
여기에 하나의 질문이 더 생긴다.
장파의 도발적 이미지 앞에서, 남성 관람객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기괴함? 불편?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데자뷔 같은 당혹’? 오랫동안 여성 신체를 바라보는 관습적 시선에 기대온 감상법이 이 전시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파의 화면에서 남성의 시각적 권력, 오랫동안 미술사를 지배해온 그 시선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붕괴한다.
그 ‘당황–흥미–저항–몰입’의 스펙트럼이야말로 이번 전시가 촉발하는 가장 현재적 도발이며, 올 연말 한국 시각예술 현장에서 가장 뜨겁게 흔들릴 질문이다.
전시는 2026년 2월 15일까지. 관람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