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처음으로 쓴 '사람' 없는 서사…사람들은 너무 호들갑"

기사등록 2025/12/09 16:11:35

최종수정 2025/12/09 16:32:07

부커상 후보 '철도원 삼대' 이후 5년만에 신작 '할매' 출간

600년된 팽나무의 시선으로 전개…"모든건 관계의 순환"

"노벨상 서구중심주의에 비판적" 로터스상 재추진 의사

금관문화훈장 수훈에 "국가권력과 긴장관계 유지할것"

 [서울=뉴시스]소설가 황석영(82)이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할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창비 제공)
[서울=뉴시스]소설가 황석영(82)이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할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창비 제공)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소설 중반까지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빠진 서사를 쓰는 게 처음이라 어색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들어낸 문장에 내가 빠져들어 '이런 글을 내가 처음 쓰는구나'하는 기쁨과 놀라움을 경험했습니다."

한국문학의 거목 황석영(82)은 9일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서 장편소설 '할매' 출간 간담회를 갖고 이번 작업의 낯섦과 참흥을 이같이 말했다.

"젊었으면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 작업이 헤밍웨이가 만년에 '노인과 바다'를 쓰며 자연과 교감하고 그 때 얻은 기쁨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황석영은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 담론 안으로 끌어들인 대표적 작가다. '철도원 삼대'로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부호에 올랐고, 오랜시간 노벨문학상 예상 후보군에 들었다. 그가 5년 만에 선보인 새 장편 '할매'는 인간이 아닌 한 그루의 나무를 주인공으로 세워 인간의 역사를 넘어선 장엄한 생명과 세계의 질서를 그려낸다.

작품은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개똥지빠귀 한 마리의 최후로 시작한다. 새는 금강 하구에서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몸에 있던 팽나무 씨앗은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며 마을 사람들이 '할매'라고 부르게 되는 거목으로 성장한다.

황석영은 "개똥지빠귀가 겨울 철새인데 팽나무 열매를 즐겨먹는다"며 새가 씨앗을 퍼트리고 배설한 자리에서 이야기가 '인연'처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나무가 600년을 버티는 동안 그 그늘 아래를 지나간 인간들의 생애가 자연의 시간 축에따라 펼쳐진다.
 [서울=뉴시스]소설가 황석영(82)이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할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창비 제공)
[서울=뉴시스]소설가 황석영(82)이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할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창비 제공)
이번 작품을 쓴 기간은 팬데믹 시기와 겹친다. 그는 "일상이 망가진 약 2년 동안, 사람이 아니라 자연세계를 쓰게 됐고 그것이 깊은 감흥으로 이어졌다. 앞으로도 여기서 더 확장된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다"고 했다.

황석영은 자연 앞에서 단순한 사실을 발견했다. 새가 천적에게 잡아먹히거나 죽어도 그 죽음은 자연의 흐름 속에서 흙으로 환원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사람이 일상에서 만들어내는 것들이 너무 호들갑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 무심한 회귀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래 바라보았다고도 했다.

작품 후반부에서는 근현대 서사로 넘어가며 새만금 간척사업과 군산이라는 장소가 등장한다. 미군기지 확장과 새만금 간척사업이라는 폭력적인 개발로 인해 바닷길은 막혀버린다. 그러나 소설은 절망에서 멈추지 않는다. 활동가 '배동수'와 순교자의 후손이자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유 방지거' 신부는 파괴된 땅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며 생명력을 보여준다.

황석영은 "새만금 갯벌이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인 동아시아 최대 자연 습지다. 철새를 비롯한 숱한 생명체들의 원천이 되는 새만금 갯벌을 막아버렸는데 시화호 사례처럼 막은 물은 썩는다"며 "서해안에 서식하는 물고기를 비롯한 해산물 80% 이상이 새만금에서 한 번씩 사는데, 약 70~80%가 줄었다. 서해안 해산물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철새들 특히 도요새 종류가 수십만 마리였는데 이게 90% 이상이 줄었다고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서식지가 없어졌기 때문에 철새들이 죽었다. 외국 자료를 보니 한반도에서 일어난 참사인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새만금에서 세계잼버리라는 졸렬한 국제행사도 봤다"며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군사 공항 역할을 더 강화해서 갯벌을 덮으려고 하는데, 환경활동가들은 수라 갯벌을 보존하려고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군산으로 내려간 계기에 대해선 "조용하게 말년을 보내고 마음에 드는 글도 쓰려고 갔는데, 광주 민주화항쟁 이후로 또 문제거리를 만났다. 동북아 최전선이 군산이라고 하던데, 거길 또 내가 찾아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소설가 황석영(82)이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할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창비 제공)
[서울=뉴시스]소설가 황석영(82)이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할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창비 제공)
황석영은 그러나 이 작품이 환경운동가나 평화운동가 입장에서 쓴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구 전체가 겪고 있는 인간의 문명, 이런 시선으로 작품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해 600년된 팽나무의 시선으로 가서, 그 팽나무가 태어나는 데서부터 시작했어요. 태어나기 전부터 이 작품은 불교에서 말하는 '관계' '릴레이션십(relationship)’의 순환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세상만사가 살고 죽는 것도 그렇다. 죽음은 관계의 변화다. 사람과 생물체가 남긴 것이 업보가 되어 이월이 되고 관계는 계속 순환한다"면서 "할매에 나오는 서사들은 바로 그런 관계의 순환과 카르마의 이전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그건 나한테 물어보면 안된다. 노벨상이 가진 서구 중심주의,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서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강대국 패권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문화 예술을 일으켜 세워보려는 작가들과 연대할 것"이라며 1980년대 이후 명맥이 끊긴 '로터스(Lotus)상'을 재추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작가로서 나이듦의 장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누구와 경쟁하거나, 다투거나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작가가 된지 64년이 됐다. 더 이상 남은 욕심이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있고. 세계 문학에 대해서 허심탄회해지는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문화예술인에게 주는 최고 등급의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소감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 때와 문재인 정부 때 두 차례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다가 이번에 받았다"면서 "고맙게 생각하나, 소감은 없다. 국가 권력과 정부와의 거리, 긴장관계는 유지하려고 한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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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처음으로 쓴 '사람' 없는 서사…사람들은 너무 호들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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