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 '라이프!', 맥베스를 노래하는 정규앨범 서사의 문학적 힘

기사등록 2025/12/07 06:31:00

4년 만의 정규 음반 발매

"정당하게 화를 내는 법을 알려주는 음반" 호평

"자우림, 우아하게 자조할 줄 아는 밴드"

"공격과 비하가 만들어내는 것은 주로 증오와 폭력"

[서울=뉴시스] 자우림. (사진 =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2.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자우림. (사진 =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2.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모든 좋은 노래는 강렬하고 또 삶적이다.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을 보이고 들리게 만드는 것이 노래다.

올해 데뷔 28주년을 맞은 밴드 '자우림(JAURIM)'이 최근 발매한 정규 12집 '라이프!(LIFE!)'가 좋은 보기다. 지난 2021년 발매한 정규 11집 '영원한 사랑' 이후 4년 만에 발매한 이번 음반은 마냥 희망을 크게 부르짖지 않는다.

"타고 남은 잿더미에 앉아 /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아"('카르마')라고 노래하며 부당한 업보에 정당하게 화를 내는 법을 공유한다. 이를 가르치지 않고 연대하며 공유하는, 음악계 '진정한 어른'이 된 밴드 열풍의 원조인 자우림은 노래가 숏폼의 배경이나 무대 위 BGM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문학적 서사의 힘으로 스스로 비상하게 만든다. 이들의 장대한 이야기는 그 만큼 내면도 깊다.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세계 앞에서 노래가 더 이상 유령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속 '맥베스'가 처했던 상황처럼, 유령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이들 앞에 현현한다.

절박하게 절규하는 자우림의 노래 앞에서 유령은 나올 리가 없다. '맥베스'의 마녀의 음성은 맥베스를 타락시키는 주문이지만, '맥베스'의 대사를 차용한 자우림의 노래는 우리를 구하는 주술적인 멜로디다. 공동의 경험을 개인의 서사로 수렴시켜주는 것의 노래의 마력이다. 영감에 넘치는 김윤아의 목소리는 타락한 시대의 고독한 샤먼의 그것이다. 이선규의 기타와 김진만의 베이스는 일종의 무령(巫鈴)이다. 

'미운오리'라는 밴드 명으로 홍대 인디클럽 블루데빌의 주력 밴드로 활약하며 청춘을 노래하던 이들은, 이제 팬클럽 '러브공작단'과 함께 사랑 그 이상의 삶을 멜로디, 가사로 짓는다. '어디로도 갈 수 없어서'(라이프!') 한없이 무력하다고 느껴질 때, 달리라고 외치는('런, 마이 걸(Run, my girl)'('마이걸' 중)) 순간 "별들이 가득한 너의 눈 넌 기적같은 걸"('스타스') 느끼는 긴 호흡은 자우림이 빚어낼 수 있는 정규 앨범 환희의 최대치다.

다음은 자우림과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자우림은 오는 26~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단독 콘서트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2025-2026] : 라이프! 서울'을 연다.

-앨범 제목의 '라이프' 알파벳을 모두 대문자로 쓰시고 느낌표를 더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냥 인생이 아니라 '인생이여!!'라는 절규이기 때문입니다."(김윤아)

-많은 이들이 정당하게 화를 내는 법을 알려주는 음반이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메시지를 넘어 음악이 되기 위해선 여러 요건을 갖춰야 하죠. 어울리는 멜로디, 글이 아닌 가사 그리고 음악적 완성도. 자우림의 이번 음반은 그걸 다 충족시키는데 이 결과까지 오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논의가 있었을 텐데 그걸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곡과 어울리지 않는 편곡과 사운드는 당연히 지양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뻔한 신파 같은 풀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도 끝에 자우림이 만족하는 지점에 도달합니다."(김진만)

[서울=뉴시스] 자우림 김윤아. (사진 =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2.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자우림 김윤아. (사진 =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2.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감사합니다. 자우림 8집을 완성한 시점에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어느 정도 회복돼 다시 일터로 돌아왔을 때, 일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언제 어떤 이유로 음악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나의 마지막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더 치열하게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자우림 8집까지는 기타, 베이스, 드럼을 편곡하고 녹음할 때 멤버들의 의견과 방식을 존중해서 큰 흐름만 정해 놓고 세세한 부분은 멤버들의 판단에 맡겼었다면 9집부터는 모든파트의 편곡과 노트들의 사소한 진행에도 일일이 개입해서 앨범 전체를 의도한 바에 좀 더 가깝게 하고 있습니다. 10집과 11집도 그렇게 작업했고 이전의 앨범들에 비해 팀의 만족도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12집은 그동안의 작업이 헛되지 않았다는 곳을 말해줍니다."(김윤아)

-앨범에는 트리플 타이틀곡들인 '라이프!(LIFE!)', '마이걸(MY GIRL)', '스타스(STARS)'를 비롯해 총 열 곡이 실렸다. 주제곡이 세 곡이라는 점에서 정규의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이 삼각편대의 유기적인 긴밀성은 무엇입니까?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래로서 공유하는 게 왜 중요한가요?

"음원 사이트들에 타이틀곡 표기를 세 곡까지 할 수 있다고 듣고 세 곡을 골랐습니다. 사전 모니터링 과정에서 멤버들을 포함해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곡들입니다. 자우림은 항상 인간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왔고 여성은 인간입니다."(김윤아)

-정규의 호흡을 가져갈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이고, 음원 스트리밍 시대로 접어든 지금도 정규가 왜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밴드가 싱글이나 EP 말고 정규앨범을 발표해 주기를 바랍니다. 수록곡들을 순서대로 들으며 내러티브를 읽어내고 전작과 어떤 부분에서 이어지고 어떤 요소들이 새롭게 자리 잡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상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완연한 스트리밍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팬분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자우림의 풀 길이 앨범을 듣고 싶습니다."(김윤아)

"음악 팬의 입장에서 자우림은 A면과 B면을 넘기며 음반을 들으며 자란 세대이고, 각 곡과 곡 사이의 여백, 곡의 순서와 배치로 느끼는 감정선을 소중하게 즐기던 리스너인지라 여전히 스트리밍보다는 음반으로 즐기는 쪽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30분 이상의 음반 전체를 들을 만한 퀄리티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어려움은 있지만 뮤지션이 선택할 일이고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도 생각합니다. 미니앨범, 싱글로 발표하면 되죠. 자우림 역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거나 창작에 어려움을 이유로 싱글 음원을 출시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이선규)

"쇼츠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여전히 장편영화만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울림과 감동은 따로 있으니까요."(김진만)

-타이틀곡들도 물론 좋았지만 전 개인적으로 '뱀파이어'에 반했습니다. 곡의 사운드 물성과 전개 구성, 노랫말이 곡의 제목은 물론 콘셉트와 완전 밀착된 쾌감이 있는데요. 이 곡을 만드시면서 가장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작은 한 철 해가 지지 않는 극지방에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뱀파이어를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변종으로 여기는 뱀파이어가 과연 변종일지 의문이 들었고 나는 변종이 아닌 게 맞을까 의심하며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담담한 목소리를 기대했으나 김윤아님의 화려하고 격정적인 목소리로 더욱 더 새빨간 아름다운 곡이 되었습니다."(이선규)

-'카르마'는 사운드적인 측면도, 메시지적인 측면도 직격탄이라서 좋았습니다.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 즉 정화작용을 주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곡은 멤버들에게 어떤 의미가 됐는지 궁금합니다. 셰익스피어 '맥베스' 대사(What's done cannot be undone)를 가사(What's done can never be undone)에 인용한 것도 맞는지 궁금하군요.
[서울=뉴시스] 자우림. (사진 =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2.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자우림. (사진 =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2.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맥베스' 대사 맞습니다. '카르마'의 세계는 모두 다 죽어야 끝나는 비극이기 때문에 차용했습니다. 더이상 관조하며 내면으로 침잠하지 않고 분노하기 시작한 자우림의 자아가 속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곡입니다."(김윤아)

-'유겐트'의 풍자적 요소가 상대를 비하하는 조롱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예술적 윤리에서 중요하다고 보고요. 이런 균형감을 위해 가장 노력한 지점은 무엇인가요?

"공격과 비하가 만들어내는 것은 주로 증오와 폭력이니까요."(김윤아)

-'아테나'와 '바쿠스'까지 이번 앨범은 장르와 은유의 성찬입니다. 무엇보다 진지한 앨범의 콘셉트와 곡의 메시지에 압도되지 않은 사운드의 질감과 멤버들의 항력이 인상적입니다. 자우림에겐 앨범 작업이 단지 즐거움이 아닌 오랜기간 한국에서 밴드를 유지해온 것에 대한 확신을 주는 투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의미로 계속 이런 반골 기질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자우림은 우아하게 자조할 줄 아는 밴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아테나와 바쿠스에서 역시 그런 힘이 느껴집니다."(이선규)

"그렇게 태어나 버린 것 같습니다."(김윤아)

-최근 국내에서 밴드 열풍에 대한 조명이 활발한데 저는 자우림이 미운오리이던 시절부터 밴드 열풍은 있었다고 봅니다. 자우림이 생각하는 밴드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실제로 밴드의 역사를 보면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악기를 하나씩 들고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밴드가 되는 경우가,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 밴드가 되는 경우보다 많고 아마 행복감도 더 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우림이 이렇게 오래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친구로 시작했고 계속 친구로 지내고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이선규)

"외부의 다른 어떤 것들을 따르기 보다 멤버들 서로 간의 견해와 취향을 따릅니다. 써놓고 보니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네요^^"(김진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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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라이프!', 맥베스를 노래하는 정규앨범 서사의 문학적 힘

기사등록 2025/12/07 06:31: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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