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시간 과로사' 불러온 새벽배송…쿠팡 노동자 "속도전 멈춰야"

기사등록 2025/11/14 15:20:15

최종수정 2025/11/14 15:53:19

"새벽 1시 마감 맞추려면 1시간 안에 전 공정 끝내야"

전문가 "야간교대는 발암물질급 위해…건강 악영향"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쿠팡 서초1캠프에 쿠팡 배송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2025.11.05.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쿠팡 서초1캠프에 쿠팡 배송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2025.11.0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임다영 인턴기자 = 새벽배송 규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거센 가운데, 심야노동으로 건강 악화와 과로에 내몰린 쿠팡 노동자들이 직접 현장 실태를 증언하고 나섰다. 속도 경쟁 뒤에 숨은 고강도 노동이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팡 노동자들과 시민사회계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집담회에서 새벽배송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은 고강도 노동에 내몰리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장치는 부재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를 맡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논쟁이 진행되는 순간 '83시간 일하다 과로사' 같은 참담한 일이 또 생겼다"며 "전날 자정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도착하는 새벽배송 시스템의 마감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한 노동을 하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 쿠팡 노동자들은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한 숨 가쁜 노동 강도를 털어놨다.

쿠팡 CFS 물류센터에서 일했다는 정성용씨는 "오후 11시59분까지 들어온 주문을 새벽 1시 마감에 맞추려면 물류센터에서 1시간 안에 모든 공정을 끝내야 한다. 그만큼 빠른 노동강도가 요구된다"며 "신선센터 야간조의 경우 오후 6시에 출근해 2시간 일하고 오후 8시에 밥을 먹고, 이후 6시간 동안은 사실상 쉬는 시간 없이 마감을 쳐내야 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택배 없는 날인 1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기사가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자체 배송망을 사용하는 쿠팡, SSG닷컴, 마켓컬리, GS25와 CU 편의점 택배 등은 이날에도 정상 운영한다. 2023.08.14. xconfind@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택배 없는 날인 1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기사가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자체 배송망을 사용하는 쿠팡, SSG닷컴, 마켓컬리, GS25와 CU 편의점 택배 등은 이날에도 정상 운영한다. 2023.08.14. [email protected]

그럼에도 생계를 위해 심야노동에 내몰리는 현실을 토로했다.

정씨는 "야간조는 기본 시급은 더 낮지만 야간수당을 합치면 월 30만원 정도 더 받기 때문에 건강 패턴이 맞지 않아도 선택하게 된다"며 "대부분이 수면 장애, 만성 피로, 우울증, 소화 불량을 호소하지만 근속이 2년을 넘기기 어려워 장기 건강 영향은 어느 누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쿠팡 CFS 캠프 소분 노동자 조혜진씨도 "야간에 나가야 200만~250만원을 벌 수 있어 이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주간으로 일을 바꾸고 퇴근길에 불 켜진 상점들 모습을 보니 '사람 사는 세상'에 다시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야간노동이 국제적으로도 '유해 노동'으로 규정될 만큼 건강 위해성이 크지만, 한국의 제도는 여전히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류센터를 직접 조사했던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은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교대근무를 발암물질로 분류할 정도로 유해하다고 본다"며 "심혈관 질환, 당뇨, 수면장애, 우울 등 거의 전 영역에 걸쳐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와의 제도 격차도 문제로 지적됐다. 유 연구원은 "국제노동기구(ILO)는 24시간 내 노동시간을 8시간을 초과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프랑스 등은 원칙적으로 야간노동을 금지하되 공익성 등이 확인될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며 "그러나 한국은 고위험 직종의 야간·연장근로 금지 규정도 없다"고 비판했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쿠팡 택배노동자 故오승용씨 유족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주지부, 전국택배노조 제주지부 등이 14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공식 입장 및 2차 진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1.14.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쿠팡 택배노동자 故오승용씨 유족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주지부, 전국택배노조 제주지부 등이 14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공식 입장 및 2차 진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1.14. [email protected]

소비자 관점에서도 '무한 속도 경쟁'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남궁수진씨는 "소비자 역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과 편의에 맞춰 시스템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라며 "소비자도 누군가의 죽음 없이 서비스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오전 0시부터 5시까지는 배송을 제한하고, 오전 5시와 오후 3시에 각각 출근하는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야간 노동으로 인한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등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현실에서 초심야 배송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제주에서 새벽배송 업무를 하던 30대 택배기사가 교통사고로 숨지기 전 일주일 동안 83.4시간을 일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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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시간 과로사' 불러온 새벽배송…쿠팡 노동자 "속도전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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