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섬, 제주]⑩끝 제주형 정원의 방향

기사등록 2025/10/31 07:54:27

정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계 매개체

지방정원과 5개 특화거점지구 방안 제시

제주 정원문화 뿌리…자연·신화·공동체 삶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29일 오후 제주시 연동 건설회관에서 '제주형 정원 기본계획 수립 및 대상지 타당성 조사용역' 중간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2025.10.31.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29일 오후 제주시 연동 건설회관에서 '제주형 정원 기본계획 수립 및 대상지 타당성 조사용역' 중간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2025.10.31. [email protected]

정원은 누군가의 손길로 다듬어진 공간이자, 자연과 함께 빚어낸 경관이다. 치유와 휴식을 제공하면서 생태계를 품는 그릇, 그리고 이웃과 소통하는 마당이 된다. 제주는 정원을 꾸미기에 이상적인 땅이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 화산섬 특유의 토양, 사계절 변화에 따라 피고 지는 수많은 식물들. 그리고 돌과 바람, 물이 빚어낸 독특한 풍경까지 정원을 이루는 요소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섬 곳곳에 담긴 정원을 통해 '제주형 정원(J-가든)'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시리즈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형 정원'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정원을 단순한 도시 장식이나 녹지확충 수단이 아닌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매개체로 보는 새로운 구상이 마련되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29일 제주시 연동 건설회관에서 '제주형 정원 기본계획 수립 및 대상지 타당성 조사용역' 중간보고회를 가졌다.

이날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정원으로 이어지는 생태문명의 섬, 제주'를 비전으로 해서 정원을 매개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 실현을 목표로 설정했다.

자연이 만드는 정원, 문화가 만드는 정원

제주형 정원의 기본구상 방향을 △생활밀착형 기후위기 적응 실천 △자연과 공생하는 정원산업 활성화 △정원 기반 여가활동과 건강한 삶 향유 등으로 정하고, 4대전략 14대 과제를 선정했다.

'공공적 가치를 담은 녹색 인프라 만들기' 전략을 위한 추진 사업으로 지방정원 조성 및 정원특화지구지정, K-가든 모델 개발 및 실증, 정원문화 플랫폼조성, 치유정원 들꽃언덕조성 등을 마련했다.

'기존 공간의 가치증진 및 질적 향상 도모하기' 전략을 위해 도심 탄소중립 모델정원 및 한뼘정원 조성, 정원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 민간정원 활성화 지원사업, 자생식물 생산 및 유통촉진 산업 기반 구축 등의 사업을 선정했다.

이와 함께 정원 교육프로그램 운영 및 실천활동 지원, 정책적 지원체계 구축도 핵심 전략이다. 도민 참여를 유도하는 정원으로는 △자연을 담은 정원 △이야기가 있는 정원 △건강증진형 정원 △예술디자인 정원 △서식처기반 정원 △주민참여형 정원 △지속가능한 정원 △기후위기 적응형 정원 등 8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이 중간보고서는 제주형 정원의 유형을 '자연이 만드는 정원'과 '문화가 만드는 정원' 등 2가지로 구분했다. 자연이 만드는 정원은 기온, 습도, 암석, 고도 등 환경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자연적 풍경과 복합적인 생태구조를 나타내는 숲을 하나의 공간에 재현한 정원을 의미한다.

[제주=뉴시스] 제주지역 중요한 환경자원이자 생태계인 도너리오름과 곶자왈. (사진=뉴시스DB)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 제주지역 중요한 환경자원이자 생태계인 도너리오름과 곶자왈. (사진=뉴시스DB) [email protected]
문화가 만드는 정원은 돌 문화 미학, 창조신화, 용천수 생활문화 등 제주 사람들이 자연에 적응하는 정신과 상생의 지혜를 담아내는 정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연경관 다양성회복, 자연의 공공적 관리와 지속성 유지, 기후변화 이슈 선도 등을 담은 지방정원을 조성하고 △정원식물 생산 △정원교육 런케이션 △정원관광·체험 △정원마을 문화예술 △바람정원 에너지경관 등 5개 특화거점을 만드는 방안도 담았다.

이날 보고회에서 한 자문위원은 "전국적으로 정원도시 조성, 정원박람회가 열풍처럼 몰아치고 있지만 대부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식상해지는 상황이다"며 "제주가 정원으로 내세울 수 있는 특화한 내용, 차별화한 콘셉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용역은 12월말에 마무리된다. 최종결과서 내용을 검토해서 제주도가 추진할 제주형 정원의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자연주의, 신화, 공동체 삶이 어우러진 제주형 정원

이처럼 제주도가 정원 기본계획을 수립한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제주는 정원도시·정원산업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주도권이 넘어가고, 정원 관광객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화산섬 지질과 다양한 미기후를 동시에 가진 지역으로 고산·중산간·해안이 모두 연결된 다층적 생태구조를 갖고 있다. 곶자왈, 오름, 용천수, 밭담, 초지 등은 이미 정원의 형태를 이룬 풍경이다.

현무암 기반의 토양은 배수가 잘되고, 1800종 이상의 다양한 식물은 자생식물 중심의 생태정원 조성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기후는 온난 습윤형으로 사계절 식재가 가능하고, 강풍과 비에 견딜 수 있는 내구성 있는 식물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자연주의 정원의 대표 주자인 제주 서귀포시 베케정원의 24일 오후 모습이다. 이 정원에는 제주 사람들이 밭을 일구고, 과수원을 만들었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2025.10.31.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자연주의 정원의 대표 주자인 제주 서귀포시 베케정원의 24일 오후 모습이다. 이 정원에는 제주 사람들이 밭을 일구고, 과수원을 만들었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2025.10.31. [email protected]
특히 자연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제주지역 생활 형태는 정원문화의 뿌리가 된다. 돌 문화, 물 문화, 마을 숲 등은 자연과 협업한 공간이다. '수눌음' 같은 공동체 중심의 노동과 돌봄 체계는 주민참여형 정원운동으로 나아가는 토대이다.

또한 이공본풀이, 삼승할망본풀이, 세경본풀이 등 제주의 무속신화에 등장하는 '서천꽃밭'은 내러티브 정원의 강력한 요소이다. 이들 신화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서천꽃밭은 생명을 잉태하거나 살리는 꽃, 벌과 죽음을 상징하는 꽃 등 신비한 꽃이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해외 정원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유럽의 정원이 '에덴'이라는 공간에 천국·질서·조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제주형 정원은 순환·공존의 공간에 생명·환생·치유의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제주의 정원이 자연주의, 신화적 세계관, 공동체적 삶으로 어우러진다면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형태가 된다.

김명준 제주정원문화센터 대표는 "정원이 지속가능하려면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으며, 가꾸는 도민이 그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껴야한다"며 "기쁜 마음으로 만드는 정원이라면 그것이 개인정원, 민간정원, 공동체정원 등에 관계없이 관광객, 탐방객이 저절로 생기면서 제주 전체가 '정원의 섬'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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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섬, 제주]⑩끝 제주형 정원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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