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김숙경씨 "옥수수 건네주던 언니, 아직도 기억해"
10명 중 1명만 가능한 남북 상봉…생사라도 알고 싶어
전문가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주의적으로 접근해야"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산가족 김숙경씨가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9.26. 20hwan@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9/26/NISI20250926_0020994593_web.jpg?rnd=20250926144109)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산가족 김숙경씨가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9.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김상윤 수습 기자 = "나는 셋째 언니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만나면 제일 먼저 묻고 싶어요. 어떻게 살았어?"
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부엌 식탁 위에는 오래된 흑백 사진과 누렇게 바랜 편지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진 속엔 평안북도 강계에서 함께 살던 가족들의 모습이 담겼다. 편지는 월남 후인 1949년 8월, 북에 남은 아버지가 보내온 마지막 소식이었다.
4일 제3회 이산가족의 날을 앞두고 만난 이산가족 1세대 김숙경(83)씨는 "누가 이북 얘기만 해도 가슴이 찡해온다"며 사진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였다. 그의 기억은 77년의 세월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기억은 여전히 선명한 반면, 현실에서 가족을 다시 만날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남북 분단 80년을 맞았지만, 정부 차원의 상봉은 2018년 8월을 마지막으로 6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이산 가족들은 80여년 째 북녁 친인척들과의 상봉에 가슴 앓이를 하고 있다.
전체 신청자 13만여명 중 생존자는 이제 3만5000명 남짓. 그마저도 대부분이 80대 이상 고령이다. 직접 이별을 경험한 김씨와 같은 고령의 이산가족 1세대에게 '시간'은 가장 절박한 과제다.
아버지와 언니를 남겨둔 채 임진강을 건넌 날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산가족 김숙경씨가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9.26. 20hwan@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9/26/NISI20250926_0020994596_web.jpg?rnd=20250926144157)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산가족 김숙경씨가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9.26. [email protected]
한국전쟁 발발 직전, 평안남도 서평양에 살던 김씨네 여섯 가족은 중국 유학을 다녀온 큰언니의 설득에 월남을 결심했다. 하지만 모든 가족이 남한 땅을 밟을 순 없었다.
다섯 자매 중 막내였던 김씨는 "둘째 언니는 강계 살 때 돌아가셨지. 셋째 언니는 이미 시집을 가 있었고, 아버지는 집 판 돈을 받으러 멀리 가 계셨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기다릴 겨를도 없이 김씨는 어머니, 두 언니와 함께 브로커의 안내를 받아 임진강을 건넜다.
그렇게 가족은 남북으로 갈라졌다.
김씨에게는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이북 땅에서 함께했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어린 시절 감기에 걸리자 아버지가 자신을 업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옆 마을로 데려가던 기억, 옥수수를 잘 먹지 못하자 셋째 언니가 씹어 건네주던 순간. 추억에 젖은 김씨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언니가 준 옥수수가 달큰하고 삼키기도 쉬웠던 기억이 난다"며 눈을 반짝였다.
수차례의 상봉 시도…닿지 못한 인연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산가족 김숙경씨가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9.26. 20hwan@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9/26/NISI20250926_0020994591_web.jpg?rnd=20250926144044)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산가족 김숙경씨가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9.26. [email protected]
김씨는 30대에 셋째 언니의 남편을 이산가족 모임에서 만났다. 1983년 방송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통해 남한에 있던 사촌 언니와도 재회했다. 이후 남북 간 이산가족 상봉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시작으로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총 21차례의 이산가족 대면 상봉이 있었다. 김씨는 "상봉이 가능해진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셋째 언니와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신청자 대비 실제 상봉 성사율은 매우 낮다. 21번 이뤄진 이산가족 대면 상봉의 성사율은 10.01%에 불과하다. 김씨 역시 상봉 명단에 들지 못했다. 그는 "이북에서 나온 사람 중에 안타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형제를 떼어놔 봐, 부모를 떼어놔 봐, 얼마나 그리운가"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올해는 분단 80년이 되는 해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3만4489명, 이 중 생존자는 3만5311명에 불과하다. 이산가족 1세대로 분류되는 80대 이상 고령자는 66.5%로,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자 수는 줄어들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정부 차원의 상봉 추진은 요원한 상황이다. 민간 교류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김씨는 "재개돼 기회가 온다면 너무 좋겠지만, 이제 그렇게 해서 상봉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생사라도 알고 싶다"…간접 교류라도 열어야
실제로 지난해 통일부가 실시한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산가족 신청자들이 가장 희망하는 교류 방식은 '생사 확인'(55.3%)이었다. 직접 상봉이 어렵더라도 최소한 가족이 살아 있는지 소식이라도 듣고 싶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군사적 계산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사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하겠다고 단절한 상황이라 이산가족 상봉은 사실상 어렵다"면서도 "(남북 간) 의지만 있다면 화상 상봉이나 서신 교환, 제3국을 통한 우회적인 상봉 등 간접적인 방식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지속적인 메시지 전달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국제기구를 통해 사안의 시급성을 알려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차원의 노력도 거론된다. 북한 당국의 태도 변화만을 기다리기보다 중국 등 제3국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민간 교류 시도가 병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 대표는 "탈북민들이 중국 관광객 등 제3자를 매개로 연락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은 경로를 활용해 최소한의 생사 확인이나 서신 교환이라도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3국 왕래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민간에서의 교류 시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산가족 김숙경씨가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9.26. 20hwan@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9/26/NISI20250926_0020994595_web.jpg?rnd=20250926144158)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산가족 김숙경씨가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9.26.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