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 자폐' 학술적 근거 있다?…의료계 "신뢰성 의문"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해열진통제) 복용이 자폐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후 전 세계 의료전문가와 보건당국이 반기를 들고 있다.

입증되지 않은 발표를 신뢰해 덜컥 임신부가 고열을 방치한다면 훨씬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2000년 이후 자폐증 비율은 400% 이상 증가했다"며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의사에게 타이레놀을 임신 중에 사용하면 자폐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해열 작용에 사용되는 의약품으로 대표제품이 타이레놀이다. 국내에서만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단일제·복합제 허가 제품이 1300여개에 이를 정도로 널리 사용된다.

이날 FDA도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들어간 제품의 라벨 변경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는데, 이 때 인용된 연구가 2019년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의 연구다. 임신부 제대혈 내 아세트아미노펜 농도가 높을수록 자녀의 자폐증 가능성이 2.14~3.62배, ADHD 가능성이 2.26~2.86배 높다는 관찰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논문은 그 해 미국의학협회 학술지(JAMA)에 등재됐다.

이와 달리 스웨덴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 등에서 2024년 JAMA 네트워크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스웨덴에서 1995~2019년 태어난 어린이 248만여명 대상 인구 기반 연구에서 친형제자매 대조군 분석 결과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관련된 자폐증, ADHD 또는 지적 장애 위험 증가의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미국과 스웨덴 연구진이 미국 국립보건원(NIH) 지원을 받아 스웨덴 아동 248만명의 건강기록을 분석한 가장 큰 규모의 조사 결과다.

안준용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지난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발표된 논문 등을 근거로 발언했는데, 그 연구 결과는 과학적으로나 실험 설계 측면에서 신뢰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운 연구"라고 지적했다.

이어 "2024년에 나온 정교한 설계의 대규모 연구 결과에선 타이레놀과 자폐증의 연관성은 없었다"며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또한 상반된 연구 결과도 많은데 입맛에 맞는 발표만 했다는 게 과학적으로 우려되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중보건의 수장들이 과학적이지 않은 주장을 하면 사람들의 불안을 내습한다"며 "또 그날 로버트 케네디 장관의 발언이 FDA의 공식 의견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FDA에서 오래 연구한 분들이 (자폐 연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학계와 WHO 등의 반박 성명도 이어졌다.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는 "20년 넘는 연구에서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 ADHD 또는 아동의 지적 장애 사이의 인과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신 중 통증과 열을 관리하는 데 안전한 선택"이라며 "치료하지 않으면 임산부 환자와 태아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0년간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조사하기 위해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됐지만 현재 일관된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했다.

유럽의약품청(EMA)도 성명을 통해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에 따르면 임신 중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 사이의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석주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세상에 100% 산모와 태아에 안전한 약은 없다. 약물 사용의 위험보다 이득이 크면 사용하는 것"이라며 "임신부의 고열은 태아에 매우 위험하고 심지어 무뇌아 등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 훨씬 심각한 위험을 갖고 있기에 발열을 방치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신부의 통증이나 발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의약품으로 여겨져왔다.

최 교수는 이어 "아세트아미노펜에 대한 많은 후향적 연구논문이 나와있는데, 사실 정확한 근거를 파악하려면 무작위 대조 연구를 해야만한다"며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전에 약물을 사용한 사람들 대상 후향적 연구를 하지만 보정해야할 임상적 변수가 많으므로, 논문 1~2개로 결론을 낼 게 아니라 여러 연구를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이번 논란에서도) 그렇게 종합 판단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신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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