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 계엄 선포일인 21일 마닐라 등에서 대규모 반부패 시위 계획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아니면 나도 거리에서 시위 벌이고 싶을 정도”
부패 표적된 공공사업부 직원들, 신체 위협에 제복도 못입고 다녀
![[마닐라=AP/뉴시스] 필리핀 마닐라 시민들이 4일 국회의원과 건설업체의 홍수 방지 비용 유용 등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09.18.](https://img1.newsis.com/2025/09/04/NISI20250904_0000604412_web.jpg?rnd=20250904140656)
[마닐라=AP/뉴시스] 필리핀 마닐라 시민들이 4일 국회의원과 건설업체의 홍수 방지 비용 유용 등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09.18.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인도네시아와 네팔에 이어 필리핀에서도 국회의원 등 권력자의 부패와 부유층 자녀의 호화 사치 등에 반발하는 시위가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은 21일 일요일 수도 마닐라 등에서 대규모 반부패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이날은 1972년 현 대통령의 부친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1917∼1989)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이다.
21일 마닐라 등 대규모 반부패 시위 예고
마르코스의 퇴진은 ‘아시아 피플파워’ 물결의 서막을 열어 이듬해인 1987년 한국에서도 대대적인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앞서 12일 ‘필리핀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필리핀 국립대(UP)에서 3000명이 넘는 학생과 교수들이 ”부패한 정부를 규탄한다“며 동맹휴업 시위를 벌였다.
필리핀이 태풍과 폭우로 피해를 입은 가운데 홍수 통제 사업과 관련된 천문학적인 부패 스캔들이 터졌기 때문이다.
시위의 도화선이 된 것은 필리핀 의회 청문회에서 나온 충격적인 폭로였다.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마틴 로무알데스 하원의장 등 하원의원 최소 17명에게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다.
공공사업도로부 출신의 전직 엔지니어도 15개 건설사가 담합해 1000억 페소(약 2조 4230억 원) 규모의 홍수 통제 사업을 독식했다고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미완성이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홍수 방지 사업과 연루된 의원들에게 전달될 돈으로 추정되는 현금 다발이 탁자 위에 수북이 쌓여 있던 모습이 청년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여기에 비리에 연루된 인물의 가족들이 SNS에서 초호화 생활을 과시해 온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필리핀 국민들의 박탈감과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부패에 대한 분노…대통령 홍수 예방댐 현장 시찰가보니 ‘댐’이 없어
이러한 분노는 필리핀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정부가 도로, 다리, 제방과 같은 인프라에 수십억 페소를 쏟아 붓고도 홍수를 억제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국민의 분노는 틱톡, 페이스북, X(옛 트위터)에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유령’ 프로젝트 계약을 따냈다고 주장하는 의원과 건설업계 거물들에 분노가 집중되고 있다.
BBC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홍수 조절 댐을 시찰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으나 해당 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경제기획부 장관은 홍수 조절에 배정된 공적 자금의 70%가 부패로 인해 낭비되었다고 밝혔다.
로무알데스 하원의장은 뇌물 연루 의혹으로 사임했지만 어떠한 부정행위도 부인하고 있다.
상원의장은 낙찰받은 건설업자가 2022년 선거 운동에 불법적인 기부금을 기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임됐다.
![Protesters throw balloons f[마닐라=AP/뉴시스] 필리핀 마닐라 시민들이 4일 국회의원과 건설업체의 홍수 방지 비용 유용 등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오물이 든 풍선을 공공사업부 건물에 던지기도 했다. 2025.09.18.](https://img1.newsis.com/2025/09/04/NISI20250904_0000604411_web.jpg?rnd=20250904140646)
Protesters throw balloons f[마닐라=AP/뉴시스] 필리핀 마닐라 시민들이 4일 국회의원과 건설업체의 홍수 방지 비용 유용 등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오물이 든 풍선을 공공사업부 건물에 던지기도 했다. 2025.09.18.
국민들, 부패 국회의원 탐욕 상징 ‘악어’ 묘사 AI 영상 돌려
분노는 부유한 정치인이나 건설업자의 자녀인 ‘네포 베이비(nepo babies)’에게도 집중되고 있다. 이들의 사치스러운 삶은 SNS에 널리 퍼지고 있다.
BBC 방송은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대중의 분노가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부친이 수십 년간의 독재 끝에 반부패 시위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사기꾼들의 실체를 밝히고 얼마나 많은 돈을 횡령했는지 알아낼 것을 조사하도록 했다”며 “내가 대통령이 아니라면 함께 거리에 나갔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홍수 피해 복구를 약속하면서도 심각한 사회기반시설 부족을 부패한 정치인들과 건설 회사 탓으로 돌리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13조원 홍수 조절 공사, 15개 기업과만 계약…관련 기업 모두 조사 대상에
이 모든 기업들은 현재 조사를 받고 있으며 중앙은행을 자산을 동결했지만 가장 큰 관심은 한 가족 소유 기업에 쏠렸다.
파시피코와 사라 디스카야 하원의원 부부는 가난한 집안 출신에서 부자가 된 사연이 공감을 얻기도 했으나 ‘홍수 스캔들’ 이후 분노의 대상이 됐다.
이 부부는 메르세데스 벤츠 마이바흐, 링컨 내비게이터, 포르쉐 카이엔 등 30여 대의 고급차를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모습도 SNS에 유포됐다.
부부는 상하원 조사에 소환됐고 시위대는 그들의 사무실 문에 진흙을 바르고 ‘도둑’이라는 단어를 스프레이 페인트로 칠했다.
디스카야 의원은 하원청문회에서 뇌물 공여를 인정했다.
디스카야 의원과 다른 계약자들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핵심 측근을 포함한 12명 이상의 의원을 고소했지만 그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필리핀서도 표적이 된 ‘네포 베이비’
네팔은 부유층 자제인 ‘네포 키즈’의 호화 사치가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분노가 커지고 이를 SNS를 통해 공유하자 SNS를 폐쇄했다가 대규모 유혈시위로 번졌다.
필리핀에서도 정치인과 건설업자의 자녀 중 정치자금 유용 혐의를 받는 사람들을 ‘네포 베이비’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공격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소셜 미디어에서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입고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는 젊은 여성들로, 쇼핑과 여행에 대한 세금 지원에 감사해야 한다는 비꼬는 댓글이 쏟아졌다.
전직 국회의원의 딸 한 명은 펜디와 디올을 매치하고, 모두가 탐내는 고가의 에르메스 버킨 백을 들고 다닌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이 중 일부는 자신들에 대한 비난이 일자 자신의 계정에서 댓글을 닫거나 아예 비활성화했다.
‘부패에 맞서는 창작자들(Creators Against Corruption)’이라는 단체의 관계자는 “우리는 끈질기게 싸울 것”이라며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사업부 직원들은 부패를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아 공공장소에서 야유와 괴롭힘을 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제복을 입지 않아도 되도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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