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배요한 기자 =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의 무게 중심이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사형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치료제가 압도적으로 시장을 이끌었지만, 이제는 경구제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복용 편의성 차원을 넘어 환자 순응도와 장기 복용 지속성, 나아가 치료 패러다임 자체를 흔드는 변곡점이라는 평가다.
비만은 고혈압·당뇨처럼 장기 관리가 필요한 대표적 만성질환이다. 그러나 기존 주사제는 환자에게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했다. 주 1회 자가주사가 도입되며 편의성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바늘을 찌르는 행위' 자체가 심리적 장벽이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약물 투여 선호도에서 10명 중 6명 이상이 경구 복용을 더 원했다. 효과가 동일하다면 주사보다 알약을 택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그로쓰리서치 한용희 연구원은 9일 "비만은 단기간의 치료로 끝나지 않고 오랜 기간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라며 "환자가 불편함을 최소화하면서 꾸준히 복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치료 성과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편의성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치료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만성질환 환자는 오랜 기간 약물을 복용해야 하므로 불편이 누적되면 치료 중단율이 높아진다. 경구제는 간편한 복용법과 휴대성을 바탕으로 환자의 치료 지속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제약사들이 주사제보다 경구제 개발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이런 환자 행동학적 요인이 있다.
실제로 다른 질환에서 경구제가 시장 판도를 바꾼 사례도 있다.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길레니아'는 주사에서 알약으로 전환되며 환자 재발률이 절반 이상 감소했고, 치료 효과도 개선됐다. 이 경험은 비만치료제 시장에서도 경구제가 주사제를 대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만은 완치 개념이 아닌 장기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란 점도 경구제의 성장성을 뒷받침한다. 경구제가 도입되면 주사제와 경쟁하기보다 함께 시장을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앞다퉈 경구제 개발에 나서는 이유다.
국내 제약사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일동제약 자회사 유노비아는 경구용 GLP-1 계열 후보물질 'ID1156'을 개발 중인데, 초기 임상에서 4주 만에 최대 6.9%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며 주목받았다. 디앤디파마텍은 미국 멧세라와 협력해 경구제 전환 플랫폼 '오라링크(ORALINK)' 기반 기술이전을 성사시키며 글로벌 시장 진입을 앞당겼다. 동아쏘시오그룹, 인벤티지랩, 삼천당제약 등도 신약·플랫폼·제네릭 개발 등 다양한 전략으로 경구제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한 연구원은 "국내 제약사들이 경구제 전환 기술을 확보한다면 단순히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기술이전과 협력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며 "이는 한국 제약 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궁극적으로 경구용 비만치료제의 성공 조건은 두 가지다. 주사제와 맞먹는 체중 감량 및 혈당 개선 효과, 그리고 환자가 꾸준히 복용할 수 있는 편의성이다. 두 요소가 동시에 충족될 때 비만치료제는 진정한 혁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주사에서 알약으로의 변화는 단순한 제형 혁신을 넘어 환자 중심 치료로의 진화를 의미한다. 비만 치료의 미래는 더 이상 병원 진료실의 주사기에 머물지 않고, 환자의 손안에 들어온 작은 알약이 글로벌 시장의 질서를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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