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은 미주리함 무조건 항복 서명 다음날을 경축일로 정한데서 시작
中 장제스 정부, 일본군 항복식 몇 차례 거행
항일전쟁 승리 기념관은 첫 군대 항복받은 후난성 즈장이 유일
![[서울=뉴시스] 중국 후난성 즈장둥쭈자치현 치리차오에 있는 유일한 ‘항일전쟁 승리기념관’. 기념관 정문이 혈(血)자를 형상화한 것은 피로 얻은 승리를 상징한다. 2025.08.28.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08/28/NISI20250828_0001929141_web.jpg?rnd=20250828151110)
[서울=뉴시스] 중국 후난성 즈장둥쭈자치현 치리차오에 있는 유일한 ‘항일전쟁 승리기념관’. 기념관 정문이 혈(血)자를 형상화한 것은 피로 얻은 승리를 상징한다. 2025.08.28.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중국이 다음달 3일 베이징에서 항일 및 반파시스트 전승 80주년 기념식 및 열병식을 개최한다.
10년 전 70주년 기념식에 이어 두 번째로 대규모의 군사 퍼레이드가 열리는 전승절 기념일 3일은 2차 대전 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뒤 경축일로 정한 날이다.
미주리함 항복 서명 이튿날을 경축일 선언
항복 선언 이후 일본이 정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것은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주리함 선상에서 였다.
미주리함 서명식에 중화민국은 쉬융창 군사위원회 군령부장이 참가했다.
일본 시게미츠 마모루 외무대신이 ‘무조건 항복문서’에 서명한 뒤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9개국 대표가 잇따라 서명했다.
장제스 정부는 미주리함 서명 이튿날인 3일 목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고 4일과 5일 사흘을 연휴로 지정했다. 6일 일요일은 정상근무를 했다. 일종의 ‘대체 근무’다.
중국 정부는 2014년 2월 이날을 처음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다.
난징에서의 항복식
약 20분간 진행된 항복식은 일본제국군 중국원정군 총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 장군이 일본어와 중국어로 작성된 항복서에 서명했다.
중화민국은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허잉친 장군이 항복을 수락했다.
이후 그해 10월 10일 일본제국군 47개 사단은 베이징 자금성에서 중국 군관계자와 연합군 대표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했다.
후난성 즈장에서의 수항식(受降式)
‘8년에 걸친 항일 전쟁은 루거우차오(盧溝橋)에서 시작해 즈장(芷江)에서 끝났다’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 유일한 ‘항일전쟁 승리기념관’이 있는 후난성 즈장둥쭈(侗族) 자치현 치리차오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처음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이곳에서 중국 전역에 배치된 100여만 일본군의 배치도를 제출하고 무장해제 등 항복 절차에 관한 명령이 적힌 비망록을 받았다.
9월 9일 난징에서 항복식을 갖는 것도 즈장에서 결정됐다. 국민장 정부 중국육군총부가 난징에서 즈장으로 옮겨와 항복 절차를 총지휘했다.
난징의 항복 서명식장이었던 중앙군관학교는 호텔로 바뀌어 흔적도 없어졌지만 즈장에는 항일전쟁승리기념관을 세우고 1년 365일 무료 개방하고 있다.
하얀색 석조 ‘수항기념비(受降紀念坊)’인 기념관 정문은 ‘중국의 개선문’으로 불린다. 기념비 겉모양이 ‘혈(血)’자를 형상화한 것은 피로 얻어낸 승리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항복 수락’ 의식이 있었던 장소는 기념관 맞은편 ‘중국전구수항전례회장(中國戰區受降典禮會場)’이라는 간판과 함께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즈장 항복 의식이 열린 좌우의 중국육군총부 등 3곳에는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와 장제스의 사진이 그대로 걸려 있다. 당시 일본의 항복은 국민당과 장제스가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이 1945년 4월 9일부터 6월 9일까지 ‘최후의 전면전’을 벌인 것도 즈장이어서 항복 접수 장소로 결정된 이유 중 하나다.
최후의 결전에서 일본은 1만5676명, 중국은 1만2483명이 숨졌다.
중국 정부가 국민당과 장제스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항일에서의 역할을 재평가하는 것이자 항일에 국민당과 홍군(후의 인민해방군)의 차이가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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