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간의 현지 이민사 연구·발굴의 결실
![[창원=뉴시스]광복 80주년 기념으로 국립창원대학교가 만든 대형 현수막.(사진=국립창원대 제공) 2025.08.13.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8/13/NISI20250813_0001917565_web.jpg?rnd=20250813144803)
[창원=뉴시스]광복 80주년 기념으로 국립창원대학교가 만든 대형 현수막.(사진=국립창원대 제공) 2025.08.13. [email protected]
[창원=뉴시스]홍정명 기자 = 머나먼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번 돈을 쪼개 조국의 독립 자금을 대고, 낯선 땅에서 민족의 얼을 지켰으나 끝내 잊혔던 독립운동가 65명의 이름이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립창원대학교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 12일 국가보훈부에 하와이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65인의 서훈을 신청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서훈 신청은 국립창원대학교박물관이 2019년부터 자체적으로 진행해 온 '하와이 한인 이민자 연구' 및 발굴의 결실이다.
특히, 하와이 현지 묘지 조사를 통해 그동안 소재가 불분명했던 묘비를 직접 발굴하고, 기록과 교차검증 작업을 통해 대한인국민회, 대한부인구제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 지원 등 공적이 확인된 65명에 대해 서훈 신청을 한 것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하와이 한인 이민 사회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금, 교민 교육, 한인회 활동, 민족정신 고취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조국 광복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비록 국내에서는 그 공적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한인 사회의 결속과 항일운동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박민원 총장은 "이번 독립운동가 서훈 신청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헌신했으나 머나먼 타국에 잊혀 있던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면서 "대학의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한 분의 애국지사라도 더 찾아내고, 그 위업을 알리는 데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국립창원대가 65명에 대한 개인별 공적조사서와 수 년 간 축적한 입증자료 등을 첨부하여 경남동부보훈지청에 제출한 서훈 신청서는 국가보훈부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주요 인물과 업적을 보면, 윤계상(尹繼常, 1867~1922.05.23) 선생은 하와이 결사단체 ‘포와하나연합회’ 총무,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부회장·중앙총회 하와이특명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하와이 한인여학교·한인기독학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수차례에 걸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유영로(柳永魯, 1868~ 1947.07.07) 선생은 1909년 국민회 산하 아이야 지방회 총무 겸 서기, 1910년 유년밀 지방회 학무원, 1914년 가와일로아 지방회 서기 겸 학무원을 역임했으며, 국민의무금·인구세 등 독립운동자금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지원했다.
이만정(李萬貞, 1870.07.20~1949.02.05) 선생은 1905년 노동이민으로 하와이에 정착. 빅아일랜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번 돈을 모아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했다. 그는 "내가 (나이) 70에 남은 희망이라고는 조선 독립밖에 없소. 내가 절용절급하여 평생 소원성취하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제일 기쁘오"라면, 하와이 한인들에게 독립운동자금 기부를 독려했다.
손점상(孫点相, 1899.09.09~1983.06.12) 선생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16년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이민했다. 대한부인구제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혈성금 등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해방 후에는 1961년 본국시찰원으로서 귀국했고, 이때 인하대학교에 700원의 거금을 기부했다.
1965년에는 자신이 자랐던 경남 진해(현 창원시 진해구)에 자활양재학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여성들에게 무료로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등 독립 후에도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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