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비판 언론을 "사악하다"고 부르는 트럼프

기사등록 2025/07/17 07:57:08

최종수정 2025/07/17 11:24:25

바이든 전 대통령, 민주당, 비판 언론, 비평가 무차별 공격

자신의 정책을 어둠의 세력에 맞서는 신성한 임무로 간주

비판자들을 경쟁자 아닌 악당으로 간주해 처벌하려 시도

[커빌(텍사스주)=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멜라니아 여사와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 텍사스주 커빌의 홍수 피해 지역을 방문해 수색대원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는 당국의 대응이 늦어져 피해가 커졌다고 질문하는 기자를 "사악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2025.07.17.
[커빌(텍사스주)=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멜라니아 여사와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 텍사스주 커빌의 홍수 피해 지역을 방문해 수색대원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는 당국의 대응이 늦어져 피해가 커졌다고 질문하는 기자를 "사악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2025.07.17.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에 반대하는 거의 모든 사람과 세력을 “사악하다(evil)”고 규정해 적대시하며 탄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주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한 기자를 “정말 사악한 사람”이라고 비난했으며 이번 주에는 민주당을 “사악한 집단”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2기 임기에서 “사악하다”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트럼프는 비판 보도나 반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넘어 자신을 비판하거나 공손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을 악인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정부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은 통치행위를 넘어 어둠의 세력에 맞서는 신성한 임무가 된다.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극단적이거나 도를 넘는 온갖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비판자들을 경쟁자가 아닌 악당으로 규정해 처벌하거나 보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2015년 대선에 처음 출마할 때부터 경쟁자나 자신의 공격 대상을 악마화했다.

그는 유세 내내 불법 이민자를 “강간범”으로 폄하했고 경쟁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를 “투옥하라”고 선동했다.

1기 6개월 2번 쓴 "사악하다" 표현 2기 6개월 11번

트럼프는 2017년 첫 임기 6개월 동안 연설에서 테러시스트, 나치, 편견을 가진 사람들, 이민자를 묘사하면서 “사악하다”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러나 국내 정치와 관련해 “사악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뉴스 보도에 대해 불평한 2번뿐이었다.

이에 비해 올해 첫 임기 6개월 동안 트럼프는 민주당이나 언론인을 “사악하다”고 묘사한 것이 11번이다.
 
트럼프는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을 “별로 똑똑하지 않은 사악한 사람”이며 “매우 사악한 체제”를 운영했고, 그의 보좌관과 검사들도 “너무 나쁘고 사악하며 부패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지난 5월12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도 민주당에 대해 “나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사악한지 알았기 때문에 출마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속이고, 훔치고, 거짓말을 하는지 안다. 그들은 끔찍한 집단”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에도 백악관 집무실에서 “우리는 무능한 대통령을 가졌었다. 그들(바이든 참모들)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사악한 의도를 가졌다”고 말했다.

현대 대통령의 발언으로서는 수위가 대단히 높은 발언이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경쟁자를 “멍청이”라고 불렀다가 대통령 품위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자 사과했었다.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트럼프처럼 “사악한 자들”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나 그가 사악한 사람으로 지목한 것은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인을 학살한 테러리스트들이지 정치적 반대자나 언론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말은 국가적 논의의 방향을 정하는 힘을 가진다. 트럼프는 대통령직이 악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라는 생각을 부추기고 스스로를 왕, 교황, 슈퍼맨으로 묘사하길 즐긴다.

거리낌 없이 투옥·추방·시민권 박탈 등 위협

트럼프는 나아가 자신이 사악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걸 주저하지 않는 모습마저 보인다.

2주 전 뉴욕 시장 민주당 후보인 조란 맘다니가 이민자 체포를 막으려 할지 모른다는 질문에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체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전 국토안보부 장관 시절 불법 이민자가 많았다는 이유로 그가 투옥돼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크리스티 노엄 현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책적 입장 차이도 처벌 대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자신과 결별한 일론 머스크를 추방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살펴봐야할 것 같다”고 답했다.

또 오래전부터 트럼프를 비난하다가 트럼프 재선 직후 아일랜드로 이주한 배우 로지 오도넬에 대해 “인류에 대한 위협”이라며 “시민권을 박탈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이라면 트럼프의 선동적 위협이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상적인 일이 돼버려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지난 14일 국방부가 애스펀 안보 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던 당국자 12명을 철수하기로 한 일은 트럼프 특유의 악마화 전략이 트럼프 정부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애스펀 안보 포럼은 전현직 당국자들이 모여 주요 안보 이슈를 논의해온 행사로 전현직 국무장관, 국방장관, 국가안보보좌관, 중앙정보국(CIA) 국장, 상원의원, 외국 지도자, 대사, 기자들이 대거 참석해왔다. 반대 입장인 사람들이 대거 참석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애스펀 안보포럼의 핵심이다. 

트럼프 1기 때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CIA 국장과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참석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포럼 참석을 취소하면서 2기 정부의 트럼프 충성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킹슬리 윌슨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는 해외에서 혼란을, 국내에서 실패를 초래한 전직 관리들을 초청한 행사를 정당화할 생각이 없다”고 불참 이유를 밝혔다.

그는 “그들은 이 행정부의 ‘미국 우선’ 가치에 반한다. 국방부의 고위 대표들은 더 이상 세계화의 사악함, 우리 위대한 국가에 대한 경멸, 그리고 미국 대통령에 대한 증오를 조장하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비판자들도 트럼프 "사악하다" 표현

한편 트럼프가 사악하다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쓰면서 시대가 바뀌었다. 트럼프를 비난하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트럼프를 “사악한” 사람이라고 불렀고 질 바이든 전 영부인도 트럼프를 사악하다고 비난했다.

질 바이든은 “트럼프가 전쟁에서 포로가 된 사람들과 전사한 사람들을 ‘패배자’ ‘멍청이’라고 불렀다고 참모들이 전한다. 사악한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트럼프가 자신의 전 개인 변호사를 연방판사로 지명한 것을 두고 셸든 화이트하우스 민주당 상원의원도 “사악한 동기가 있다”고 비난했다.

최근에는 트럼프 지지자였던 극우 음모론자 알렉스 존스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문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에 분노해 “사악한 세력들이 트럼프 정부를 장악하려 한다”고 트럼프 정부를 비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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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비판 언론을 "사악하다"고 부르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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