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였다는 죄책감에 잠 못 이뤘다"…日, 전쟁 트라우마 첫 전시

기사등록 2025/06/30 15:56:54

최종수정 2025/06/30 18:57:39

日병원, 일제 정신질환 일지 8천여건 보관

[이토만=AP/뉴시스] 23일 오키나와 전투 종전 80주년을 맞아 일본 오키나와현 이토만 평화기념공원 내 '평화의 초석' 앞에서 한 유족이 기도하고 있다. 2025.06.23.
[이토만=AP/뉴시스] 23일 오키나와 전투 종전 80주년을 맞아 일본 오키나와현 이토만 평화기념공원 내 '평화의 초석' 앞에서 한 유족이 기도하고 있다. 2025.06.23.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중국) 산둥성에서 양민 6명을 죽였다. 그 일이 꿈에 나타나 잠을 설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전선에 투입됐던 일본군 병사가 민간인 살해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남긴 기록이다. 이처럼 전쟁의 상흔은 피해국 시민뿐 아니라, 총을 든 병사들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 이 같은 전쟁 트라우마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유족들 사이에서 연대 활동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지난해부터 관련 조사에 착수, 다음 달 관련 첫 전시를 앞두고 있다.

30일 아사히신문은 전쟁 중 정신질환을 앓은 일본군 병사 8002명의 병상일지가 지바현 도가네시의 민간병원에 보존돼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가 전쟁 트라우마를 주제로 한 첫 기획 전시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그간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온 병사들의 정신적 상흔을 공적 책임의 영역에서 재조명하려는 시도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7월 중 도쿄 소재 국립 전상병자 자료관에서 전시를 시작할 예정이다. 병사 가족들이 남긴 회고록과 생활기록 등 관련 자료 분석도 함께 진행한다.

해당 병상일지는 모두 태평양전쟁 당시 지바현 이치카와시에 있던 국부다이 육군병원에 정신질환으로 입원했던 병사들의 기록이다.

종전 직후 군은 일지 폐기를 명령했지만 당시 군의관이던 고(故) 아사이 도시오(淺井利勇)는 "후세에 남겨야 한다"며 병원장과 함께 이를 드럼통에 담아 지하에 묻었고 수년 뒤 파내어 5년여에 걸쳐 전부 복사한 뒤 자신이 개업한 아사이 병원에 보관해왔다.

의무기록 속 병사들은 전투의 참혹함, 전우의 죽음, 민간인 살해 등을 겪은 뒤 과각성, 감정 마비 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추정되는 증상을 호소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사회는 이를 주로 알코올 중독이나 가정폭력 등의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취급해왔다.

전쟁 트라우마가 질환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베트남전 귀환병의 고통을 PTSD로 규정하면서부터다.

이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계기로 PTSD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각국에서 확대됐다.

일본 내에서도 유족들을 중심으로 전쟁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나누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도쿄에 거주하는 구로이 아키오는 2018년 옛 일본군 병사의 유족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는 단체를 설립했다. 해당 단체는 정기 모임 외에도 매달 교류회를 열고 있으며 오사카·지바 등 전국으로 활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후생노동성은 올해 전시를 시작으로 아사이 병원 보존기록의 분석, 가족 체험담 수집 등을 통해 일본군 전쟁 트라우마의 실태를 규명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조사는 국가가 '전상병자'로 공식 인정한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전문가와 유족들 사이에서는 "공적 기록이 없는 병사들까지도 포괄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전상병자 외 병사들은 전쟁과 증상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도 "향후 추가 조사 가능성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 유족은 "전쟁은 죽은 사람뿐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며 "지금이야말로 일본 사회가 전쟁 병사들의 또 다른 피해자성을 성찰할 때"라고 호소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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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였다는 죄책감에 잠 못 이뤘다"…日, 전쟁 트라우마 첫 전시

기사등록 2025/06/30 15:56:54 최초수정 2025/06/30 18: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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