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영상 제공 시 관계인 신원 특정 불가능하도록 해야
경찰 관계자 "긴급성 요구해도 2차 피해 방지할 절차 필요"
법조계 "행정력 들더라도 바람직한 변화…진작 이뤄졌어야"

[서울=뉴시스] 이명동 기자, 박나린 인턴기자 =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경찰이 수사 사건 영상을 언론 등에 제공할 때는 정보 주체의 동의를 얻도록 절차를 마련하라며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개정을 권고한 것과 관련해 경찰은 "피해자 보호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2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일선 경찰은 현재도 사건 관계인 보호에 노력하고 있지만 인권위의 권고 사항을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달 19일 경찰에 수사사건 공보 규칙에 피해자·참고인 등 영상 제공 때 정보 주체로부터 동의를 받도록 하고 언론사 등에 사건 영상을 제공할 때 사건관계인의 신원을 인식·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되지 않도록 처리하라고 권고했다.
경찰 관계자 "피해자 보호 노력…부족한 부분 보완하겠다"
아무리 긴급성을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사건관계인 동의를 받고 이들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등 절차를 지키도록 하는 방향으로 변화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요즘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돼서 더 꼼꼼하게 처리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라며 "수사만큼이나 피해자 보호도 중요하다. 이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피해자 보호 등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보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바람직한 변화…언론 자유와 균형 찾아야"
박민규 법무법인 안팍 대표변호사는 "규정을 개정하는 데 행정력이 일부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면서 "규정을 개정한다고 어디인가에 피해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개정 권고는 타당해 보인다. 다만 진작 이뤄졌어야 더 좋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경찰이 좋은 취지로 공보 활동을 한 것은 이해가 된다. 유사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던 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앞으로는 이 부분을 주의해야 할 것 같다"며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피해자 동의를 반드시 받아서 홍보나 자료 정보 제공에 쓰는 것이 좋아 보인다. 2차 피해가 되기도 한다"고 짚었다.
곽 변호사는 "배포 기준을 경찰 내부적으로 더 엄격하게 개정하고 개선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면서도 "안 그래도 일로 바쁜 경찰분들에게 '이게 문제다'라고 너무 강하게 지적하기보다는 개선해서 내부적으로 절차를 더 꼼꼼하게 만들어 보자(는 정도가 바람직해 보인다)"고 부연했다.
다만 규정 개정에 따라 공보 활동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파트너변호사는 "(인권위 권고 내용이)강하다. 누구도 영상 제공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인권위도 고려해야 할 부분은 이같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회적 범죄와 관련해서는 범죄 상황 자체에 관해 국민이 알 필요도 있다. 이는 언론 자유의 영역이기도 하고 서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영상 제공)동의는 받으면 좋은데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불법으로 본다면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측면에서 조금은 과한 측면도 있다"며 "인권위 권고의 취지 자체를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고 했다.
인권위, 피해자 진정 접수 뒤 경찰에 규정 개정 권고
담당 경찰공무원은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국민 대상 신속한 공보의 필요성이 있었으며 공보 규칙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 부분은 일체 모자이크 처리를 한 뒤 언론에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또 진정인의 민원 제기 뒤로 곧바로 관련 기사를 삭제 요청해 현재 해당 영상은 삭제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는 모자이크 처리가 됐더라도 사건관계인의 신원을 충분히 알 수 있거나 유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영상이 제공됐다고 판단했다. 특히 범죄 피해자인 진정인의 동의를 사전에 얻지 않은 채 영상을 배포한 것은 헌법상 보장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현재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은 수사사건 등의 공개를 금지하는 원칙을 두고 있지만 범죄유형과 수법을 국민에게 알려 유사한 범죄의 재발을 방지할 필요가 있을 때는 수사사건 등의 피의사실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명예가 손상되거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심리적 안정 등이 침해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성명, 얼굴 등 사건관계인의 신원을 알 수 있거나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가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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