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다 가블러' 구원 투수 홍선우 "값진 수업 중입니다"[문화 人터뷰]

기사등록 2025/05/27 16:50:36

건강 문제로 하차한 윤상화 대체 … '브라크' 역에 긴급 투입

이틀 만에 대사 외워…"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작업, 환상적"

"이혜영, 따뜻하고 매력적…'대배우'라는 칭호 이해되더라"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브라크 역의 배우 홍선우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5.27.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브라크 역의 배우 홍선우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5.2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평생 다시는 못할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국립극단의 시즌 단원 홍선우(39)는 지난 16일 개막한 '헤다 가블러'에 '브라크' 역으로 출연 중이다. 이혜영이 맡은 주인공 '헤다'를 끈질기게 탐하며 지배하려는 인물이다.

그러나 불과 이십여 일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초  '헤다 가블러'는 8일 개막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막을 하루 앞두고 당초 캐스팅됐던 윤상화가 건강 문제로 하차하면서 국립극단은 급하게 대체 배우를 찾았다.

홍선우는 지난 7일 아내와 다음 날 떠날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다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단장님께서 '날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브라크 역을 대신 맡아줄 수 있겠냐'고 하셨어요. 개인 작업도 아니고 국립극단인 데다, '헤다 가블러'는 올해 최고 화제작이라 사실 부담스러웠죠."

전화를 끊은 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출연을 결심했다. 제주도 여행은 물론 공연 폐막일인 6월1일까지 잡아놨던 개인 일정은 모두 취소했다.

홍선우에게는 8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안에 대사와 동선을 숙지하고, 출연진들과 호흡을 맞춰 무대에 설 준비를 모두 마쳐야 했다.

보통 캐스팅이 6개월 전에는 이뤄지고, 2~3달의 연습을 거쳐 개막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브라크' 역은 비중도 높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브라크 역의 배우 홍선우가 23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5.27.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브라크 역의 배우 홍선우가 23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5.27. [email protected]

홍선우는 7일 자정께 받아 든 대본을 보고 또 보며 이틀 만에 대사를 모두 외웠다. 그는 "식음을 전폐한다는 말이 왜 있는지 이해가 가더라. 계속 대사를 외우다 9일 오전에 조연출님과 연습하면서 대사가 '탁' 나오는데, 그제야 밥이 넘어갔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밤낮 가리지 않고 공연 준비에 매진한 끝에 자신 만의 '브라크'를 무대에서 무리 없이 풀어놓고 있다.

갑작스레 하차하게 된 윤상화와 홍선우는 지난 2020년 연극 '작가'에 함께 출연한 인연이 있다.

홍선우는 "처음으로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를 느낀, 정말 존경하는 선배다. 이번 '헤다 가블러'에서도 윤상화 선배님의 연기를 너무너무 기대하고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행히 윤상화는 최근 병세가 많이 호전됐다. 최근 병문안에서 만난 윤상화는 "브라크 어때? 재미있지? 재미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건넸단다.

존경하던 윤상화의 대체 배우를 맡게 되면서 큰 책임감을 느꼈던 홍선우는 "그 안에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씀이 다 담긴 것 같았다. 부담이 될까봐 배려를 해주신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선배가 큰 파도를 넘기고 다시 돌아오시면 또 얼마나 멋진 연기를 보여주실지 벌써 기대가 된다"며 윤상화의 건강한 복귀도 바랐다.

우여곡절 끝에 합류한 '헤다 가블러'는 그에게도 여러 의미를 남겼다.

관록의 이혜영과 호흡을 맞춘다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홍선우는 "이혜영 선배님은 굉장한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 연기를 하게 되니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너무 따뜻하신 거예요. '헤다'라는 역할로도 접근하셨겠지만, 저라는 배우를 빨리 포용하시려고 에너지를 많이 써주시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정말 매력적이세요. '브라크'가 지배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헤다'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더라고요. 명배우, 대배우라는 칭호가 이런 분께 붙는구나 싶었죠."
배우 홍선우(위)와 이혜영이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에 출연 중이다. (사진=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배우 홍선우(위)와 이혜영이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에 출연 중이다. (사진=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출연 배우들과 함께 연습을 한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그 부분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는 아직도 숙제다. 평소 성실함을 무기로,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그에게는 이 부분도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홍선우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같이 작업하고 있는 지금이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다. 하지만 그런 선배님들과 같이 호흡하기에 내가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서 그 부분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지 지금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막을 내린 연극 '그의 어머니'에서는 7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김선영과 연기했다.

연이어 남다른 연기 내공을 가진 배우들과 작업하게 된 홍선우는 "어머니는 '대배우들과 공연도 하고 출세했다'고 하시더라"며 웃고는 "레벨 자체가 다른 선배님들과 연기한다는 건 무엇보다 값진 수업이다.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고 의미를 새겼다.

연극계 상반기 최고 화제작인 '헤다 가블러'는 LG아트센터와 국립극단이 비슷한 시기에 공연을 올려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7일부터 공연 중인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에는 한류스타 이영애가 나선다.

주연 배우인 이혜영과 이영애를 비롯해 등장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고 있다.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에서 '브라크' 역은 지현준이 소화 중이다.

홍선우는 "예전부터 지현준 선배님의 공연을 많이 봐왔으니 얼마나 잘하실지 알 수 있다"며 "만약 (나에게) 두세 달의 연습 기간이 있었다면 의식이 됐을 것 같다. 그런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부분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개막 일주일이 넘은) 이제는 신경이 쓰이는 것 같긴 하다"며 웃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브라크 역의 배우 홍선우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5.27.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브라크 역의 배우 홍선우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5.27. [email protected]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정으로 공연을 시작하게 된 그는 "다시는 절대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다시 5월7일로 돌아가면 출연 제의를 받아들일지' 묻자 "사실 며칠 전 아내에게 '나, 하길 잘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다시 돌아가도 해야죠. 누구라도 해야 했던 작업인데, 그게 저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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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다 가블러' 구원 투수 홍선우 "값진 수업 중입니다"[문화 人터뷰]

기사등록 2025/05/27 16:50:36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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