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전직 광부들 한숨 vs 늘어나는 신청에 인력 부족

석탄 캐는 광부 모습.(사진=전제훈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태백=뉴시스]홍춘봉 기자 = "아픈 몸이지만 2년째 수술도 못 받고 공단의 승인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강원도 태백. 폐광의 도시에서 병든 몸 하나로 버티는 A씨(67)의 절규다.
탄광의 비좁고 탄가루 날리는 열악한 막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탓에 관절부위 통증이 심해 산재요양을 신청했지만, 1년3개월이 지나도록 근로복지공단 태백지사로부터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산재 승인조차 받지 못한 채, 그는 지금도 병원 문턱을 전전한다.
공단 태백지사의 산재 승인 지연 문제가 구조적으로 장기화되면서, 수많은 환자들이 제도적 방치 속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일부 환자는 1년6개월, 심지어 2년 넘게 결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산재보험 제도인가?”
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 전문의 6인이 참여하는 기관이다. 질환에 대한 판단과 치료 필요 여부를 결정하는, 말 그대로 ‘최고 권위’다. 그러나 일선 지역본부나 지사는 이 판단을 손쉽게 무시한다.
최근 노무사 A씨는 본부 판정위원회에서 “6개 부위에 대한 수술과 요양이 필요하다”는 자문의 결과를 받았지만, 강원지역본부는 이를 “수술 불필요”로 일축하고 요양을 종결했다. 단 한 명의 자문의 의견에 기대어 본부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건 행정 갑질입니다. 제도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처사입니다.” 노무사 A씨의 말은 태백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공단 태백지사에 들어오는 산재 신청은 대부분이 근골격계 질환, 소음성 난청,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중장기 치료가 필요한 유형이다.
최근 장성광업소(2024년 6월 폐광) 여파로 산재 신청은 급증했으며, 도계광업소(2025년 6월 예정), 경동탄광(2028년 예정)까지 줄줄이 폐광이 예고돼 있어 향후 10년간 이런 상황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인력과 인프라 모두 절망적이다. 평균 승인까지 1년6개월~2년이 걸리는 현실은 사실상 시스템 붕괴를 의미한다.
소음성 난청 환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서울 대형병원에서 청력검사까지 받은 환자들조차, 다시 동해병원이나 태백병원에서 특진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들 병원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실태조사까지 병원에 맡기면서 진단은 3개월 이상 지연된다. 게다가 사업장 소음 노출 여부 확인도 병원 몫이다. 이는 명백히 공단 본부의 책임을 의료기관에 떠넘긴 결과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소음성 난청 환자는 2020년 9090건에서 2024년 2만1247건으로 폭증했지만, 이들의 산재 승인 속도는 ‘거북이보다 느리다’는 자조가 나올 지경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본지 질의에 “산재 신청이 매년 증가하고 있으나 이에 대응한 인적 인프라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관련 부처에 인력확충을 건의하고 있지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80%를 차지하는 업무상 사고는 법정기한 내 처리 중”이라며 “업무상 질병은 개인적 요인과 직업적 요인을 함께 조사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고 밝혔다.
공단은 소음성 난청 관련해 “산재 요건 충족 여부는 시행령 기준에 따라 판단하며, 소음노출력 조사는 청구인의 작업환경자료 확인 및 공단 병원의 특별진찰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소음노출력조사 간소화 방안과 신속한 업무처리 효율화를 추진 중”이라는 궁색한 답변이다.

국내 최초의 산재병원인 태백시 장성동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전경.(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황상덕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회장은 “공단의 산재처리 지연에 대한 근본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 특단의 대책 강구 대신, 하나마나한 답변은 책임회피의 전형”이라며 “병들고 지친 환자들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지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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