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촌까지 파고든 불법도박, 광부·청소년도 ‘도박의 늪’

[태백·정선=뉴시스]홍춘봉 기자 = 합법 사행산업의 상징으로 자리한 강원랜드. 폐광지역 경제의 심장이자, ‘휴식과 재미’를 제공하는 이곳을 둘러싼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고한·사북·태백·도계 등 강원랜드 인근 지역에서 불법 도박이 암암리에 퍼지며 폐광촌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18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에 따르면, 2022년 국내 불법 도박 시장 규모는 약 102조원.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실제 규모는 최소 300조원에서 최대 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규제를 피해 음지로 숨어든 불법 도박이 이미 합법 시장을 압도한 셈이다.

특히 폐광지역인 태백과 정선, 삼척 일대는 불법 도박의 유입이 더욱 빠르게 확산 중이다.


정선 고한·사북에서는 강원랜드를 찾은 방문객을 상대로, ‘합법보다 더 높은 배당’을 미끼로 한 불법도박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소액 베팅으로 고객을 유도한 뒤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로 연결, 리베이트와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폐광지역 주민들도 도박의 덫에 쉽게 노출된다.


태백 장성광업소 폐광 이후 직장을 잃은 광부들이 온라인 도박에 빠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법무사 A씨는 “50대 광부들이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었다며 상담을 요청했다”며 도박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삼척 도계지역 역시 폐광을 앞두고 온라인부터 오프라인까지 불법도박이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계읍 번영회 관계자는 “하우스 도박과 온라인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청소년까지 불법 도박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 도박 예방을 목표로 활동하는 ‘도박없는학교’에 따르면, 매월 수십 명 이상의 학생들이 온라인 도박 중독으로 학업을 포기하거나,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조호연 교장은 “중·고생의 60% 이상이 도박을 경험했으며 일부는 범죄까지 손을 댄다”고 말했다.

불법 도박 관련 범죄는 10년 만에 4배 가까이 폭증했다. 사감위 통계에 따르면 도박 범죄 신고는 2014년 1만건에서 2023년 4만8000건을 넘어섰다.



운영자들은 가상계좌·사회관계망서비스(SNS)·웹툰 등을 통해 청소년까지 포섭하고 있지만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 가고 있다. 합법 사행산업이 지키지 못한 빈틈, 그곳에 불법 도박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규제와 단속의 균형이 무너진 지금, 폐광촌을 비롯한 지역사회와 다음 세대는 여전히 도박의 그림자 속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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