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참사 법률지원단·민변 광주전남지부 촉구 회견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광주지방변호사회 제주항공참사 법률지원단·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가 7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서 참사 100일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5.04.07. wisdom21@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4/07/NISI20250407_0020762906_web.jpg?rnd=20250407112236)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광주지방변호사회 제주항공참사 법률지원단·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가 7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서 참사 100일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5.04.07.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국내 최악의 여객기 사고로 남은 12·29 제주항공 참사 100일을 맞은 7일 광주·전남 변호사들이 꾸린 피해자 지원단체가 철저한 진상 규명을 거듭 촉구했다.
국토교통부 등 사고 조사 당국을 상대로 교신기록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증거 보전 등 각종 법적 대응에도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광주지방변호사회 제주항공참사 법률지원단·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는 이날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서 참사 100일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진상규명 촉구 성명서를 통해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유족들과 함께 싸워갈 것이다. 교신 기록 등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할 것이다. 민사상 증거보전 절차도 신청할 계획이며 유족들이 원하면 형사고소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참사 발생 100일이 됐다. 대형 참사지만 사고 원인은 여전히 안개 속에 묻혀 있다. 피해자들의 배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고통 속에서 조사 결과만 마냥 기다리고 있다. 전남경찰청이 수사 중이지만 아직 사고 책임자 한 명도 입건하지 못한 상황이다"며 피해자·유족의 애타는 심정을 대변했다.
그러면서 교신 기록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들은 "교신기록 등 자료는 추가 증거 발견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공익을 위해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다. 교신 기록은 사고 원인에 다가갈 수 있는 핵심 정보이기 떄문에 공개 필요성이 높다. 진 상규명과 유족의 알 권리라는 공익적 요청에 비춰도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사고 조사 당국이 일부 유족에게 사고 전 4분7초 동안의 교신기록을 공유한 사실을 공개하며 방식과 내용 모두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교신기록) 공개 하루 전에 공지해 유족들의 참여권을 보장되지 않았다. 모든 유족들이 알 수 있도록 교신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조류충돌 의혹을 해소하려면 착륙 시도를 한 시점인 사고 10분 전부터 공개해야 한다. 음성도 변조 등 절차를 거쳐 공개되는 것이 의혹 해소의 길이다"고 했다. 누설·논평 금지 서약까지 받아 사실상 유족들의 공론화를 가로막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사고 경위에 관한 의혹으로는 조류충돌 직후 복행 시도 이유, 복행 직후 기수를 180도 꺾어 긴급 동체착륙한 이유, 조류 충돌 시점, 랜딩 기어를 다시 내리지 않은 배경, 블랙박스 기록이 멈춘 뒤 사고기가 동력이 필요한 복행한 점 등도 제시했다.
단체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이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는 길이며 진상규명 없이는 제대로 된 배상도 될 수 없다. 사고 재발방지책도 나올 수 없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을 새겨서 조사도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회견에 동석한 피해 유족들은 "사고 조사 당국이 원인 규명 활동을 투명하고도 형평성 있게 공개해야 한다",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가해자 중심 보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29일 오전 9시3분께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방콕발 제주항공 여객기가 동체만으로 착륙하려다 활주로 밖 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을 정면충돌하고 폭발했다.
12시간 여에 걸친 구조 작업에도 불구, 탑승자 181명(승무원 6명·승객 175명) 중 179명이 모두 숨진 채 수습됐다. 생존자는 사고 직후 기체 후미에서 구조됐던 승무원 2명에 불과했다.
1993년 7월26일 아시아나기 해남 추락 사고(66명 사망·44명 부상)보다 사상자 수를 크게 웃돌아 국내 최악의 항공 참사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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