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영국에서 법학과 경제학 공부.. 아테네대 교수
1970년대 사회당 정계 입문.. "국민 삶 바꾼 지도자"
![[아테네=AP/뉴시스] 코스타스 시미티스 전 그리스 총리가 2000년 4월 10일 박빙의 차이로 보수당 후보를 이기고 총리직에 당선했을 때의 모습. 그는 아테네 교외의 주말 주택에서 5일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그리스 정부는 4일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그리스의 유럽연합 가입을 선도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2025. 01. 06.](https://img1.newsis.com/2025/01/05/NISI20250105_0000006615_web.jpg?rnd=20250105173527)
[아테네=AP/뉴시스] 코스타스 시미티스 전 그리스 총리가 2000년 4월 10일 박빙의 차이로 보수당 후보를 이기고 총리직에 당선했을 때의 모습. 그는 아테네 교외의 주말 주택에서 5일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그리스 정부는 4일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그리스의 유럽연합 가입을 선도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2025. 01. 06.
[서울=뉴시스] 차미례 기자 = 그리스의 전 총리이며 2001년 그리스의 유럽연합 가입을 주도했던 코스타스 시미티스가 5일(현지시간) 서거했다고 그리스 국영통신 AMNA와 관영 ERT TV가 보도했다. 향년 88세.
시미티스는 일요일인 5일 아테네 서부의 주말 별장에서 의식을 잃은 심정지 상태로 코린트 시내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그리스 매체들이 병원 원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사인은 부검을 통해 밝힐 예정이다.
그리스 정부는 시미티스 전 총리의 서거에 대해 4일 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1996년에서 2004년까지 총리직을 맡았던 사회당 소속의 시미티스는 그리스의 경제적 사회적 개혁에 힘쓰면서 그리스를 유럽연합에 가입시키고 유로화를 통화로 채택하는 중책을 수행했다고 그리스 언론들은 보도했다.
AP통신과 신화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시미티스의 죽음에 전국적으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으며 지지자들 뿐 아니라 정적들까지도 애도를 표하고 있다.
라이벌 중의 한 명이었던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도 성명을 발표, " 우리들의 탁월한 학자이고 교수였으며 의회에서도 훌륭한 지도자였던 시미티스 전 총리에게 애도와 함께 작별을 고한다. 시미티스는 그리스의 현대화와 개혁에 탁월한 지도력과 많은 노력을 쏟아 부어 이 나라를 세계적 초점의 중심에 가져다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미티스가 자신의 존경하는 정적이었지만, 지난 수 십년에 걸쳐서 그리스의 발전에 가장 강력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었다고 덧붙였다.
1936년 아테네에서 가까운 항구도시 피레우스에서 태어난 시미티스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나치 독일 점령하에서 레지스탕스 정부 지도자였으며 어머니는 초기 여성운동에 나섰던 페미니스트 활동가였다.
그는 1950년대엔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이후 1960년대엔 영국 런던 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여러 해 동안 아테네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했다.
그러다가 그는1974년에 그리스의 사회당인 판헬레닉 사회주의 운동 ( PASOK)을 창당하는 데 가담했다. 이 정당은 그리스 정계를 수십년간 주도해왔으며 나중에 그는 이 당의 대표직을 이어 받아 정치가로 나섰다.
온화한 성품의 그는 지지자들 뿐 아니라 정적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보수당 소속인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디미트리스 아브라모풀로스도 시미티스가 아테네 시장이었을 때 "온화하면서도 강력한 그는 아무런 갈등 없이 매끄럽게 아테네 올림픽을 조직하고 치러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올림픽 뿐 아니라 모든 국정에 의무감을 가지고 헌신했다. 어려운 난제에 봉착해도 굳건히 이겨냈고 그리스 국민의 삶을 변화시킨 훌륭한 정책들을 펼치며 활동했다"고 그는 찬사를 보냈다.
시미티스는 유럽연합 가입을 반대하는 파판드레우 총리 시절에도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실용주의 정치 철학을 가지고 이를 추진했다. 파판드레우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럽경제공동체에 70년대에 가입한 것이 결국 유럽 연합 가입으로 이어졌다.
사회당 대표였던 파판드레우 총리가 병으로 1996년 1월 중도 퇴임한 이후 갑자기 총리직에 오른 시미티스는 2004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2004년에는 키프로스의 유럽연합 가입을 돕는 등 인접 국가나 분쟁 대상국들과도 좋은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시미티스 전 총리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60년 간 함께 해온 아내 다프네와 두 딸, 손녀 한 명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시미티스는 일요일인 5일 아테네 서부의 주말 별장에서 의식을 잃은 심정지 상태로 코린트 시내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그리스 매체들이 병원 원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사인은 부검을 통해 밝힐 예정이다.
그리스 정부는 시미티스 전 총리의 서거에 대해 4일 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1996년에서 2004년까지 총리직을 맡았던 사회당 소속의 시미티스는 그리스의 경제적 사회적 개혁에 힘쓰면서 그리스를 유럽연합에 가입시키고 유로화를 통화로 채택하는 중책을 수행했다고 그리스 언론들은 보도했다.
AP통신과 신화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시미티스의 죽음에 전국적으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으며 지지자들 뿐 아니라 정적들까지도 애도를 표하고 있다.
라이벌 중의 한 명이었던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도 성명을 발표, " 우리들의 탁월한 학자이고 교수였으며 의회에서도 훌륭한 지도자였던 시미티스 전 총리에게 애도와 함께 작별을 고한다. 시미티스는 그리스의 현대화와 개혁에 탁월한 지도력과 많은 노력을 쏟아 부어 이 나라를 세계적 초점의 중심에 가져다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미티스가 자신의 존경하는 정적이었지만, 지난 수 십년에 걸쳐서 그리스의 발전에 가장 강력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었다고 덧붙였다.
1936년 아테네에서 가까운 항구도시 피레우스에서 태어난 시미티스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나치 독일 점령하에서 레지스탕스 정부 지도자였으며 어머니는 초기 여성운동에 나섰던 페미니스트 활동가였다.
그는 1950년대엔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이후 1960년대엔 영국 런던 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여러 해 동안 아테네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했다.
그러다가 그는1974년에 그리스의 사회당인 판헬레닉 사회주의 운동 ( PASOK)을 창당하는 데 가담했다. 이 정당은 그리스 정계를 수십년간 주도해왔으며 나중에 그는 이 당의 대표직을 이어 받아 정치가로 나섰다.
온화한 성품의 그는 지지자들 뿐 아니라 정적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보수당 소속인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디미트리스 아브라모풀로스도 시미티스가 아테네 시장이었을 때 "온화하면서도 강력한 그는 아무런 갈등 없이 매끄럽게 아테네 올림픽을 조직하고 치러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올림픽 뿐 아니라 모든 국정에 의무감을 가지고 헌신했다. 어려운 난제에 봉착해도 굳건히 이겨냈고 그리스 국민의 삶을 변화시킨 훌륭한 정책들을 펼치며 활동했다"고 그는 찬사를 보냈다.
시미티스는 유럽연합 가입을 반대하는 파판드레우 총리 시절에도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실용주의 정치 철학을 가지고 이를 추진했다. 파판드레우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럽경제공동체에 70년대에 가입한 것이 결국 유럽 연합 가입으로 이어졌다.
사회당 대표였던 파판드레우 총리가 병으로 1996년 1월 중도 퇴임한 이후 갑자기 총리직에 오른 시미티스는 2004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2004년에는 키프로스의 유럽연합 가입을 돕는 등 인접 국가나 분쟁 대상국들과도 좋은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시미티스 전 총리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60년 간 함께 해온 아내 다프네와 두 딸, 손녀 한 명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