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재편에 청주 민주 초선 싹쓸이
응급실 뺑뺑이 도민 '고충'…경제도 흔들
통합 충북대 가시화…충청광역연합 출범
[청주=뉴시스] 임선우 기자 = 시국이 혼란스럽다. 갑진년 청룡의 해는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의 소용돌이 속에 서쪽 하늘로 넘어간다.
충북의 시곗바늘도 어느덧 한 바퀴 돌아 자정을 가리킨다. 코로나19, 오송 지하차도 참사 같은 대형 악재는 없었으나 전국을 강타한 의료 대란과 탄핵소추 여파가 국토의 중심에도 미쳤다.
2년 전 지방선거에서 완승했던 여당은 올해 총선에서 주도권을 잃었다. 지역색이 옅은 충북의 선거 결과는 이번에도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였다.
경제도 어려웠다. 반도체 산업이 AI와 고대역폭 메모리 호재에 힘입어 충북 경제를 홀로 지탱했다.
충북의 아들 김우진은 역대 올림픽 최다 금메달리스트에 올랐다. 지방거점국립대인 충북대는 교통대와의 통합을 사실상 확정 지으며 제2의 도약을 눈앞에 뒀다.
◇총선 정치지형 여소야대 재편…전국 민심 바로미터
지난 4월10일 치러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북의 정치지형이 더불어민주당 우위로 재편됐다.
21대 총선부터 이어지던 여·야 양분 구도가 깨지고 도내 8개 선거구 중 민주당이 5곳, 국민의힘이 3곳을 챙겼다.
민주당은 청주 상당(이강일), 서원(이광희), 흥덕(이연희), 청원(송재봉) 등 청주권 4석을 초선 의원으로 싹쓸이한 데 더해 중부3군(증평진천음성·임호선)까지 지켰다.
국민의힘은 제천·단양(엄태영)과 충주(이종배), 동남4군(보은옥천영동괴산·박덕흠)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종배·박덕흠 의원이 4선 고지에 오르고, 엄 의원이 재선에 성공한 것이 위안이었다.
역대 선거에서 전국 판세의 축약판이자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충북은 이번 총선에서도 민심의 바로미터임을 재확인했다.
충북에서 민주당이 5석(62.5%)을 차지한 수치는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이 기록한 192석(64%)과 비슷했다.
◇정치 1번지 맹주 정우택, 돈봉투에 불명예 퇴진
국민의힘 정우택(청주상당) 전 국회부의장이 '돈봉투 수수 혐의'로 6선 고지 문턱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정 전 부의장이 지역구 카페 사장 A씨에게 돈봉투를 받는 CC(폐쇄회로)TV 영상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도마에 올랐다.
그는 "봉투를 곧바로 돌려줬으며 공천 심사를 앞두고 벌어진 정치공작"이라고 항변했지만, 업자가 "영상에 찍힌 것 외에 정 전 부의장 측에 전달한 돈이 더 있다"고 밝혀 의혹이 확산했다. 결국 국민의힘 중앙당은 정 전 부의장의 공천을 취소했다.
충북 정치 1번지 청주상당의 맹주로 군림한 정 전 부의장은 이번 총선을 거쳐 국회의장까지 도전하려 했으나 공천 취소로 꿈이 무산됐다.
반년여 간의 경찰 수사에 이어 검찰은 정 전 부의장과 카페 사장 A씨, A씨에게 변호사비 대납을 약속한 혐의를 받는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필용 전 음성군수 등 관련자 6명을 재판에 넘겼다.
정 전 부의장 측은 법정에서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 앞으로의 재판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국힘 충북지사-청주시장 정책갈등 '내분'
연말 탄핵 소용돌이에 빠진 국민의힘은 지방정치에서도 난맥상을 드러냈다.
국민의힘 소속 김영환 충북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은 올해 원도심 내 대현지하상가 활용방안을 놓고 충돌했다.
청주시가 이곳을 청년특화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설계용역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김 지사가 느닷없이 잔디광장 조성 방안을 들고 나왔다.
도청 일원 '문화의 바다'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대현지하상가를 포함한 청주대교~상당공원 700m 구간을 지하차도화 한 뒤 지상에 대규모 광장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시장은 즉각 반발했다. 재원 조달 가능성과 정책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김 지사의 잔디광장 조성 방안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지난해 모든 점포가 폐점한 대현지하상가는 민간 투자자의 무상 사용권이 만료하는 20228년 청주시로 기부채납된다. 지하상가 일대 사직대로의 소유권도 청주시에 있다.
두 단체장은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현금성 복지 정책에서도 갈등을 빚었다. 지난 10월 양자회동 후 청주시가 김영환표 저출생 복지정책에 참여하기로 했으나 사직대로 개발 방안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앙금을 남겼다.
◇충청권 메가시티 초석 '충청광역연합' 출범
대전·세종·충북·충남 등 충청권 4개 시도가 뭉친 '충청광역연합'이 지난 18일 공식 출범했다.
충청광역연합은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자 충청권 4개 시도가 설립한 특별지자체다.
2022년 관련 제도가 시행된 이후 특별지자체가 출범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충청광역연합은 초광역 교통망 구축과 공동전략산업 육성, 광역 간선급행버스 체계 구축·운영 등 단일 시도가 대응하기 어려운 21개 사무를 우선 추진한다. 이를 위해 2개 사무처가 만들어졌고, 4개 시도에서 공무원 60명이 파견됐다.
초대 연합장은 김영환 충북지사가, 연합의회 의장은 노금식 충북도의원이 각각 선출됐다. 임기는 연합장 1년, 의장 2년이다.
충청광역연합 출범은 충청권 4개 시도가 하나로 뭉쳐 수도권에 버금가는 지역 내 총생산 290조원, 인구 560만 명의 충청권 메가시티 건설의 초석을 다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만, 행정 통합과 각종 사업에 대한 시도 간 이해관계가 달라 견해차를 어떻게 좁혀나갈 수 있을지가 충청광역연합의 성공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병원 떠난 전공의…충북대병원 응급실 '대란'
의대 증원 반발에 따른 전공의 이탈로 충북 유일의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학교병원 의료 공백 사태가 1년 내내 이어졌다.
지난 2월 전공의 114명이 사직서를 제출, 지난 9월 복귀자 8명을 제외한 106명이 계약 만료로 사직 처리됐다.
병원 측은 수개월간 사직 처리를 보류하며 복귀를 요청했으나 전공의들의 응답은 없었다. 하반기 두 차례 진행된 전공의 모집에서도 지원자는 없었다.
전문의도 1월 217명에서 12월 203명으로 14명 줄었다.
의료진 이탈은 진료 공백으로 귀결됐다. 충북대병원은 8월 두 차례 응급실 일반진료를 중단하다가 10월부터 매주 수요일 응급실 일반진료를 멈추고 있다.
충북대병원 응급실은 2월 이후 전문의 1명, 전공의 9명, 인턴 6명이 사직해 현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으로 운영 중이다. 응급실 공백에 따른 진통은 한국병원, 효성병원, 성모병원, 하나병원 등 청주지역 2차 종합병원으로 번졌다.
충북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삭발과 단식 등 강력 투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병원·대학 측과 여전히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손도 못 써보고' 응급실 대란 속 꺼져간 3살 생명
의료 대란 속에 보은의 세 살배기 아이가 상급병원으로 옮겨지지 못한 채 숨지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지난 3월30일 오후 4시30분께 충북 보은군 보은읍의 한 과수농가에서 생후 33개월 된 A양이 근처 1m 깊이의 물웅덩이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양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A양을 보은군 내 유일한 2차 의료기관인 보은한양병원으로 이송했다.
구조 당시 호흡이 없던 A양은 심폐소생술(CPR)과 약물 치료를 받아 1시간30여분 만에 맥박이 돌아오고, ROSC(자발순환회복)와 자발호흡 상태까지 이르렀다.
병원 측과 119상황실은 청주·세종·대전·천안 등 7개 도시 상급종합병원(3차 의료기관)에 전원 요청을 했으나 병상과 소아 전문의 부재를 이유로 10개 병원에서 전원 거부를 당했다.
1시간 뒤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원을 수용했으나 A양은 이미 숨진 뒤였다.
6~8월 석 달간 충북에서 119구급대의 1시간 이상 이송사례는 전년 동기 대비 57.2%나 증가했다. 청주에서 탈장 증세의 영아가 3시간 만에 서울로 옮겨져 수술을 받고, 음성에서 40대 임산부가 구급차에서 출산하는 등 응급실 뺑뺑이가 잇따랐다.
◇도내 첫 종합병원의 씁쓸한 퇴장
충북 최초의 종합병원인 청주병원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청주병원은 지난 7월 의료법인 허가 기준인 기본재산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충북도와 청주시로부터 각각 의료법인 설립허가 취소 처분과 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다.
청주시 신청사 부지에 편입된 청주병원은 임시병원 이전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임차 건물은 의료법인 기본재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충북도 의료법인 설립 및 운영기준에 따라 병원 운영권을 잃었다.
청주병원은 2019년 공익사업 수용재결로 건물과 토지 소유권을 청주시에 넘긴 뒤 퇴거에 불응해 왔다. 보상금 수령액은 179억800여만원이다.
의료법인 해산 절차에 돌입한 청주병원은 다음 달까지 병원에 남은 의료기기와 집기류를 철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병원은 1981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3가 청주시청 뒤편에 도내 첫 종합병원(15개 진료과, 160병상)으로 개원한 뒤 올해 상반기까지 내과 위주로 운영해왔다.
◇반도체 하나로 버틴 충북 경제
올해 충북 경제는 총체적 부진을 겪었다.
내수부진 장기화와 수출 불확실성 확대 등의 여파로 제조업, 건설, 수출, 소비 등 대부분 분야에서 역성장을 나타냈다.
3분기에는 광공업 생산이 전년 동기 대비 2.9%, 건설 수주액이 15.4%씩 감소했다. 소비자물가는 8월부터 11월까지 넉 달 연속 1%대로 둔화했으나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12월 도내 소비자심리지수(88.3)는 코로나19 시절인 2022년 11월(87.2) 이후 2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나마 반도체 산업의 반등이 위안거리였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 증가에 힘입어 연간 최고 수출액을 찍었다. 11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43.1% 증가한 102억2992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반면, 이차전지 수출액은 완성 전기차 부진과 배터리 화재 여파로 23.2% 감소한 17억5827만 달러에 그쳤다.
◇충북대-교통대 통합 매머드급 '충북대' 탄생
충북의 거점 국립대 충북대와 한국교통대가 물리적 화학적 결합을 이뤄냈다.
통합안 협상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있기는 했지만, 두 국립대는 2027년 전국 최대 국립대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입학 정원이 5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충북도내에서는 옛 충주대가 경기 의왕 철도대와 충북보건과학대와 통합한 선례가 있으나 4년제 국립대 통합이 성사된 것은 처음이다.
통합 대학본부는 청주에, 산학협력단본부는 충주에, 대학원본부는 증평에 각각 배치할 계획이다. 충북대라는 통합 교명에 걸맞게 도내 전역에 캠퍼스를 보유하게 된다.
청주는 기초원천기술 중심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충주는 미래지향 공학 중심의 글로컬 교육연구 대학으로, 증평·오창은 이차전지·반도체·바이오·모빌리티 실증 캠퍼스로 특화된다.
2023년 11월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30 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한 두 대학 통합 산고를 1년여 만에 마무리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김우진,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 등극…공치사 정치색 잡음도
신궁 김우진의 활약으로 그의 고향 옥천군이 들썩였다.
김우진은 2024 파리올림픽 남자양궁 전 종목을 석권하며 올림픽 단일대회 3관왕과 올림픽 한국인 최다 금메달 신기록을 달성했다.
옥천군은 양궁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김우진의 업적 기리기에 분주했다.
주민 협의를 거쳐 이원면에 명예도로 '김우진로'를 조성하는가 하면, 양궁 저변 확대를 위한 '옥천양궁협회'까지 창립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선거 출마가 가시화된 김재종 전 옥천군수가 협회 회장직을 맡아 정치색 잡음이 일기도 했다. 임직원마저 전직 군수의 측근들로 채워지면서 협회 창립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우진은 다른 일정으로 양궁협회 창립총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협회 측은 다른 의도가 없다고 해명했으나 지역 체육계는 정치색으로 양궁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지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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