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에 전격 비상계엄 선포…참모들도 몰라
"국회 범죄자 소굴 돼…자유민주 체제 전복"
국회, 계엄군 진입 속 190명 해제요구 가결
4일 새벽 해제…"탄핵·입법농단 중지해달라"
야 "내란죄…즉시 하야" 여 "국방장관 해임"
[서울=뉴시스] 김승민 김지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3일 늦은 밤 국회를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지칭하며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했다. 이후 약 6시간여 만인 4일 새벽 국회 요구에 따라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1979년 10·26 사건(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45년 만의 일로, 1987년 민주화 이후로는 초유의 사태다.
심야 전격 비상계엄 선포…야권 겨냥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야권의 지속되는 정부 각료 탄핵과 단독 입법, 내년도 예산안 단독 감액 등을 지적하며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고 했다.
대통령은 계엄법에 따라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데, 현재 국회의 상황이 이 조건을 충족한다고 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북한 공산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담화 직전인 오후 8시께를 전후해 내각을 소집해 국무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의 선포와 해제는 헌법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초대 대통령경호처장을 지낸 윤 대통령 측근 인사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했다고 한다.
계엄군 국회 진입…여당 18명 등 190명 전원 찬성 해제요구 가결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내고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업무를 관장할 수 있다. 또 필요시 체포·구금·압수·수색, 거주·이전, 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해 '특별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계엄군은 4일 오전 0시께부터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했다. 국회 사무처 직원과 정당 보좌진이 저지하면서 물리적 충돌도 일어났다. 계엄군이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과 당대표실 외부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자 당직자들은 소화기를 분사하며 막아섰다.
한편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는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조치하겠다"며 모든 국회의원을 본회의장으로 소집했다.
계엄군은 12시45분께 로텐더홀에 진입했으나 본회의장 안까지 들어가지는 못했다. 같은 시각 우 의장은 본회의장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상정한 본회의를 개의했다.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은 오전 1시2분 재석 190인 중 찬성 190인으로 통과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약 2시간30여분 만이었다.
더불어민주당 153명, 조국혁신당 12명, 진보당 2명, 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개혁신당 각 1명, 무소속 2명과 함께 여당인 국민의힘 18명이 참여했고 반대표는 없었다.
표결 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면서 "국민 여러분 신속하게 국회로 와달라.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국회를 지켜달라"고 했다.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도 당대표 입장문을 통해 비상계엄 즉시 철회를 촉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비상계엄 선포 직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다.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힌 뒤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결의안이 통과된 뒤 여야는 한목소리로 즉각 계엄 해제를 촉구했다. 대다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한 국민의힘도 조속한 계엄 해제를 당론으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계엄군은 청사 밖으로 물러섰다.
선포 6시간 만에 해제…계엄 사태 두고 폭풍우 예상
헌법과 계엄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할 경우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이를 공고해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오전 4시를 넘기는 시점까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계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추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오전 4시26분께 추가 담화를 통해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전날 계엄 선포와 같은 방식으로, 사전 공지 없이 카메라 앞에서 입장문을 읽었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 바로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를 거쳐 4시30분부로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군은 4시22분부로 계엄사무에 투입된 병력을 부대로 복귀시켰다.
윤 대통령은 다만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은 향후 이날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에 대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추궁해갈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하야 촉구뿐 아니라 여당의 정부 견제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 계엄 해제 선언 직후 "내란죄를 피할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은 더 이상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음이 온 국민 앞에 명백히 드러났다. 즉시 하야하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대통령이 이 참담한 상황에 대해 직접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계엄을 건의한 국방부 장관을 즉각 해임하는 등 책임 있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