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 회사 중요 결정 저해 우려"
행동주의펀드에 기업 공격 명분만 만들어 줄 수 있어
기업 절반 이상 "상법 개정되면 M&A 철회" 밝혀
[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키는 '해외 투기자본 먹튀조장법'으로 작용할 것이다."(국내 경제 8개 단체 공동 성명)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며 정치권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안 처리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경제계는 이 같은 상법 개정안을 환영하기보다는 투기자본에게 경영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고, 결국 기업들이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소송과 분쟁에 휘말릴 여지가 높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민주당 주도의 상법 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으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주주'로 확대하는 대목이다.
현 22대 국회에서는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11건이나 계류 중인데, '이사는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정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 같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법 개정안들이 하나같이 ▲이사에 대한 주주들의 소송 증가 ▲투자 결정 저해 ▲행동주의 펀드 악용 우려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재계는 특히 수많은 경영 과정에서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판단한 주주들이 이사들을 향해 손해배상 청구, 배임죄 형사고발 같은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높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사들이 다양한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모두 확인하며, 주주들의 이익을 합치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상법 개정안은 이사회의 신속한 투자 결정에도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만약 지금 상법 개정안이 과거에도 있었다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진출이나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 같은 결정은 나오지 못했다"며 "주주들이 엄청나게 반발해 결국 사업 진출을 접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천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상법 개정안은 합병이나 물적분할 등 기존에 정당하게 잰행해 온 자본거래들도 일부 주주들의 문제 제기에 노출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며 "경영진이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의사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한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경영권 공격이 더 유리한 국면으로 치닫을 가능성도 있다.
자사주 처분이나 이익잉여금 유보 같은 결정을 소액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경영권을 공격할 수 있어서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이외에 주주로까지 확대한 사례는 없다는 지적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미국 모범회사법과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 주요국의 회사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된다.
권 교수는 "상법 개정안은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경영판단을 지연시켜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상장사 절반 이상은 이사 충실의무 확대 시 인수합병(M&A)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국내 상장기업 153개사를 조사한 결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M&A계획을 재검토 하겠다'는 의견이 44.4%였으며, '철회·취소'하겠다는 의견은 8.5%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 기업의 66.1%는 상법 개정시 해당 기업은 물론 국내 기업 전체의 M&A 기회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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