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미아리텍사스촌 동료 40여 명 성북구청 앞 추모제
재개발 이주에 생활고…불법 대부업체에 무방비 노출
갑작스런 이주 '막막'…성북 "현황 파악·지원에 어려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또다시 불법으로 내몰리고 싶지 않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 가정의 딸로서 손가락질 당하며 비난받지 않도록 이승로 성북구청장님은 꼭 저희의 이주대책을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밤이면 홍등(紅燈)을 환히 밝히던 서울 강북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속칭 '미아리텍사스'에서 일하다 불법 대부업체의 채무 독촉 끝에 목숨을 끊은 박희연(가명·35)씨의 49재를 맞아 한 동료는 이같이 고인이 남긴 글을 대독하는 것으로 성북구에 호소했다.
미아리 성노동자 이주대책위원회 소속 동료 40여명은 7일 오전 서울 성북구청 앞에서 여섯 번째 집회를 열고,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홀로 키우다 '불법 채무의 덫'에 빠져 지난 9월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박씨를 추모했다.
'신용불량자 가능'. 재개발 추진 이후 골목 바닥을 채운 일수 전단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유혹했다. 불법이라는 낙인, 상권 쇠퇴에 따른 생활고에 시달리던 텍사스촌 종사자들은 불법 대부업의 유혹에 노출된 채로 방치됐다.
박씨가 빌린 돈은 고작 50만원이었다. 뇌경색을 앓는 아버지를 대신해 딸을 돌봐주던 육아도우미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빌린 50만원은 2주 만에 180만원으로 불어났다. 늘어나는 빚과 가족, 지인을 상대로 대부업자 일당이 성매매 사실을 폭로하자 이를 견디지 못한 박씨는 결국 세상을 등졌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발효와 집중단속에도 붉은 불빛이 새어 나오던 텍사스촌은 내년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재개발 추진에 가속도가 붙으며 다음 달부터 부분 철거가 시작된다. 철거 시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떠나지 못한 성매매 업소들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생계를 유지할 대안이 없는 탓이다.
현장에 모인 위원회 일동은 박씨 영정사진 앞에 서서 추모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가오는 철거 시한에 막막함과 불안함을 호소했다. "우리는 살고 싶다. 우리도 이곳의 주민이다", "미아리 재개발 조합은 우리의 이주대책 강구하라"라는 외침이 이어졌고 그들 손에는 '우리 생활터전 강제이주 결사반대' '구청장은 재개발보다 우리의 이주대책을 먼저 강구하라' 등 글자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이틀 전 성북구 하월곡동 집결지 인근에서 뉴시스 취재진을 만난 박씨의 동료 정선미(가명·44)씨와 최영희(가명·38)씨는 박씨를 '딸아이 보는 낙에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던 동료'로 기억했다.
정씨는 "평소에도 그 아이는 '언니, 딸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빨리 목돈 모아서 이 생활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갖고 애를 키우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했다"면서 "그런데도 아이를 두고 그런 선택을 했을 때는…"하고 말 끝을 흐렸다.
그는 "우리가 이곳에서 나가 한 두 달 생활해서 적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지금 나가면 사회부적응자나 마찬가지"라고 자조했다.
열여덟 살 미아리에 발을 들인 정씨는 이곳에서 숙식하며 26년을 일했다. 미아리 테두리 밖을 벗어난 적 없는 정씨는 이제 나가서 뭘 해야 하는지, 적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를 듣던 최씨도 "저는 중졸이다. 중졸이라서 (이력서에) 쓸 것도 없다. 내일모레 마흔인데 이미 늦을 대로 늦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씨는 최근 심부전 등으로 병원에 두 달을 입원해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혈액 투석까지 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청구되는 30만원이 넘는 청구서 탓에 일을 쉴 수 없다.
이들은 곧 그들이 지내온 생계의 장(場)에서 나가야 한다. 성북구와 조합은 이주 완료 시점을 내년 연말로 잡고 이주를 마친 일부 지역을 시작으로 오는 12월부터 부분 철거를 진행할 예정이다. 재개발 추진 전 5000명에 달했던 이곳에 남은 인원은 대략 400~500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성매매 업소 종사자들만 13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은 없다. 이들이 삶의 2막을 개척할 수 있도록 서울시와 성북구는 대책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점이 있다. 정부 사업으로 쉼터 제공, 의료·법률 상담 등도 가능하지만 대상 인원 집계가 어려운 데다 당장 생계를 걱정하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을 설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대부분 종사자들이) 거주지 등록이 돼있지 않아 인원 집계가 원활하지 않다"며 "여성단체를 통해 법률·취업 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서비스 이용에 소극적이라 복지혜택 제공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성북구와 서울시는 7년 전 여성단체와 손잡고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매매 예방 및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2017)를 제정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 집결지에서 벗어나 더는 성매매를 하지 않을 경우, 일정 기간 이들에게 생계비와 주거 이전 비용·직업훈련·교육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는 결국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현실화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을 놓고 성북구청 관계자는 "구와 서울시는 2017년, 2021년 성매매 피해자 자활지원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제정한 바 있다"면서 "시행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구청뿐 아니라 여성인권센터 '보다'도 미아리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활·독립 지원 사업 등을 해왔다. 하지만 종사자들은 이들이 기대하는 주거 이전비·생활비 등 현실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재 여성단체와의 소통마저 단절한 상황이다.
이하영 '보다' 소장은 "현재 예산 문제 등으로 현실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종사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며 "지원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분도 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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