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름이 유난히 길게 이어졌다. 그런 탓에 나뭇잎이 늦게서야 가을 색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울은 왜 이리 서둘러 오는 것인지. 홍엽(紅葉)은 미처 만산(滿山)하지 못한 채 이른 북풍에 하나둘 지고 있다.
하지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만추'(晩秋)엔 이 또한 '매력'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인 겸 문학 평론가 레미 드 구르몽(1858~1915)이 시 '낙엽'에서 '시몬'에게 "좋으냐?"고 물었던, 길에 쌓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들리는 '바스락' 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낙엽 위 걸음마다 신발을 넘어 느껴지는 감촉, 그리고 낙엽 하나하나가 마치 올 한 해 내가 보낸 시간의 편린(片鱗)인 것과 같은 착각까지 다 그렇다.
그런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한국관광공사가 '11월에 가볼 만한 5곳'을 꼽았다. 바로 ‘낙엽 밟으며 걷는 길’들이다.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기자 = 대전 서구 장안로 '장태산 자연 휴양림'에선 매년 가을 메타세쿼이아의 가녀린 침엽들이 향연을 펼친다.
침엽수는 사철 푸른 잎을 뽐내는 나무다. 소나무, 전나무, 주목 등이 해당한다.
메타세쿼이아도 침엽수다. 그러나 그 앞에 '낙엽'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가을이 되면 그 침엽들은 붉게 물들고, 이내 낙엽이 돼 땅 위에 얕고 넓게 퍼진다.
장태산 휴양림에 메타세쿼이아 숲을 조성한 이는 고(故) 임창봉씨다. 휴양림 초입에 있는 그의 흉상엔 '1972년부터 24만여 평에 2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적혀 있다.
안타깝게도 고인의 사업이 어려워져 휴양림은 경매에 나오고 말았다. 이를 대전광역시가 인수해 '산림 문화 휴양관' 등을 새로이 지어 오늘에 이른다.
메타세쿼이아 숲을 비롯한 휴양림을 잘 가꾸는 것도,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두 고인의 '나무 사랑'을 기리는 방법일 것이다.
휴양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스카이 웨이'와 '스카이 타워'다.
스카이 웨이는 지상 10~16m 높이에서 메타세쿼이아 사이사이를 지난다. 나무는 방문객 머리 위로 한참을 더 솟아있다. 중생대 백악기에 거대한 공룡들과 함께 산 '살아있는 화석'다운 키다.
스카이 웨이가 끝나는 지점에 스카이 타워가 있다.
높이 27m의 나선형 덱을 몇 바퀴를 돌아 올라 정상부에 다다른다. 그제야 비로소 메타세쿼이아 맨 꼭대기에 돋아난 새순인 '우듬지'와 눈을 맞출 수 있다.
이 휴양림은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가 재임 기간 여름 휴가를 보내 더욱더 유명해졌다.
관리 사무소 앞엔 문 전 대통령 탐방 코스 안내도가 있다. 메타세쿼이아 삼림욕장과 숲속 교실을 지나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구간이다. 50분가량 걸린다. 초입의 삼림욕장까지만 다녀와도 충분하다.
고요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엔 메타세쿼이아 숲 아래가 스카이 웨이 쪽보다 낫다. 선베드, 들마루 등 쉼 자리가 잘 갖춰졌다.
스카이 웨이에서 이어지는 길이 140m '출렁다리', 다정히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생태 연못' 등도 명물이다.
'숲속의 집' 등에서 하룻밤 묵어가며 메타세쿼이아 숲을 마주할 수도 있다.
주변 관광지로 서구 정부 대전청사와 엑스포 과학 공원 사이 '한밭 수목원'이 있다. 메타세쿼이아가 아닌, 다른 나무들이 연출하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1993년 '대전 엑스포'를 계기로 조성한 부지엔 2005년 '서원', 2009년 '동원', 2011년 '열대 식물원'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2023~2024 한국 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릴 만큼 숲이 울창하다. '전국 최대 도심 수목원'답다.
서원의 '명상의 숲'에서 '습지원'을 지나 '단풍 숲'에 이를 때까지 가을이 진하게 영글어 가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명상의 숲 인근에선 매년 이맘때면 활엽수들의 붉은빛과 대숲의 초록빛이 묘한 대비를 이루니 꼭 챙겨보자.
수목원 남쪽 서구 '둔산대공원'에 '이응노 미술관'이 자리한다.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국내 대표 추상화가다. 동양의 필묵을 기반으로 '군상'(群像) 시리즈와 문자 추상 작품을 선보였다.
2005년 서울의 이응노 미술관이 폐관하자 대전광역시가 소장품을 인계해 2007년 개관했다.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엥이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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