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국제미술제 ‘포에버 이즈 나우’, '네 개의 신전' 공개
세계 각국 12명 작가 참여…올해 한국 작가 처음 화제
사막 바람에 움직이는 "한글 아랍어 상형문자 드라마틱"
[카이로=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강익중의 한글 작업이 이집트에서도 통했다.
피라미드 앞에 세운 '한글 신전'은 사막과 바람 사이에서 알록달록 존재감을 뽐내며 K콘텐츠와 K아트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4000년 동안 피라미드가 한글이 오기를 기다린 것 같아요. 밤에 피라미드가 한글에 '이제 왔냐'고 대화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25일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에서 만난 설치 미술가 강익중(64)은 "40여년간 한글 작업을 하며 피라미드에 작품 설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보였다.
강익중은 올해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며 '강익중 시대'를 열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청주시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청주시립미술관에서 특별 전시회를 열었고, 9월엔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뉴욕한국문화원 신청사에 가로 8m, 높이 22m의 한글벽화를 세웠다. 이 작품 설치 후 뉴욕한국문화원 홈페이지를 방문한 인원은 82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피라미드는 삼각형이다. 천지인에서 인(人)이다. 이집트인들은 오래된 건축물이고 인류역사의 중요한 시발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로 본다. 한글도 마찬가지로 세모 네모 동그라미가 있지 않나. 천지인의 요소를 담고 있다. 한글의 아리랑은 남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통일에 대한 열쇠가 될 수 있다. 한글과 피라미드는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어주고 조화롭게 안아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설치미술가 강익중)
올해 4회를 맞는 이번 전시는 24일 개막, 11월16일까지 진행된다. 한국의 강익중 외에도 크리스 레빈(영국), 페데리카 디 카를로(이탈리아), 제이크 마이클 싱어(남아프리카 공화국), 장 보고시안(벨기에/레바논), 장 마리 아프리우(프랑스), 칼리드 자키(Khaled Zaki, 이집트), 루카 보피(이탈리아), 마리 후리(캐나다/레바논), 샤일로 시브 술맨(인도), 나씨아 잉글레시스/스튜디오 INI(그리스), 자비에르 마스카로(스페인/라틴 아메리카) 등 12명이 참여하여 시간과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주제 아래 거대한 모래사막에 대지미술의 아름다움을 꽃피웠다.
아리랑 노래와 5016개 그림으로 만든 '한글 신전'
피라미드 앞에 세운 '네 개의 한글 신전(Four Temples)'은 세계의 모든 고통과 갈등을 포용하고 노래하는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24일 행사 개막과 함께 공개된 작품은 사막에 설치된 12개의 작품 중 가장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집트의 한국어 열풍으로 개막 첫날 강익중은 아이돌 못지않은 사진 세례와 각국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이어져 피신할 정도였다.
이날 한글신전 안에서는 카이로의 아인샴스(Ain Shams) 대학 한국어 학생들 30명이 참여한 ‘Learn Arirang with Hyundai Rotem(현대로템과 함께 하는 아리랑 배우기)’ 워크샵에 KBS 정용실 아나운서가 참여해 주목 받았다. ‘아리랑’ 가사를 배우고,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제출했던 학생들이 드로잉 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의 꿈을 한국어로 얘기하는 행사였다.
실제로 카이로에서 한국어와 한국인은 '핫한 트렌드'다. 아인샴스 대학 한국어과는 이집트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학과로 이들은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이고 세계 부강한 나라로 미국, 프랑스, 한국을 꼽는다. 피라미드 등 관광지를 방문하면 중고생 등 학생들은 '안녕하세요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사진을 찍자고 카메라를 내밀기 일쑤다.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로 적힌 ‘네 개의 신전’
"강익중의 작품은 올해 작품들 중에 가장 드라마틱하고 가장 주제를 잘 녹여낸 작품이다. 사막에 한글, 아랍어, 영어, 파피루스에 기록된 상형문자가 어우러진 이런 템플이 세워져 놀랍기 그지 없다…내년에도 한국 작가 작업을 선보였으면 한다"(포에버 이즈 나우' 디렉터 나딘 압델 가파르 감독)
강익중의 ‘네 개의 신전’은 과거(피라미드)와 미래(전 세계 사람들의 꿈)를 주제로 탐구하는 작품이다. 4개의 정육면체에 외벽에는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로 적힌 한국 민요 ‘아리랑’이 새겨져 있다. 내벽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그린 5016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글은 강익중이 즐겨 쓰는 소재로, 개별 자음과 모음이 모여 완전한 단어를 형성하는 과정이 작가가 추구하는 ‘화합’의 주제와 맞는다.
이번 전시에서 강익중은 처음으로 한글 이외에도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를 넣어 네 개의 언어를 사용했다. ‘포에버 이즈 나우’ 전시 주최측은 이번 전시의 전체주제인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문명’이라는 점을 작품에 반영해달라는 요청을 모든 작가들에게 했고, 강익중 작가는 네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 주제를 반영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이집트와 한국의 문화기관 및 학교들과 협력해 어린인들의 '꿈그림'과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 난민들의 그림도 함께 설치했다. 한국 전쟁 실향민들의 그림과 함께 이 작품은 사람들의 꿈, 아픔, 도전을 상징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난민들이 '부모님이 그리워요'라는 글귀와 '전쟁이 없어져서 우리나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는 그림과 고향집 약도를 적어 그린 실향민의 그림 등 한 장 한 장 담긴 염원과 소원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땅을 밟고 있지만 숨을 쉬면서 이어주는 설치물을 만들면서 보는 관람객들이 우린 모두 이어져 있구나 느낀다. 결국 언어는 언어가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관객들이 많은 사람들의 꿈과 도전을 공감하면서 각자의 마음에서 치유를 찾기를, 이 작품이 세계를 화해시키고 치유하는 해독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강익중)
5016개의 그림은 가로 20x세로 20cm의 포맥스 보드에 인쇄가 되어 철골구조에 하나하나 매달렸다. 사막에서 부는 거센 모래 바람으로 그림이 흔들리고 서로 부딪치면서 작품은 오히려 힘이 세졌다. 마치 방울이 흔들리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소리가 울리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이면서 희망의 빛으로 치환되고 있다.
사막의 바람에 순응한 작가 강익중의 계산된 작업이다.
"이번 작업은 바람과의 싸움이었어요.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듯이 결국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노래하듯이 보여 더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피라미드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지만 한글 신전은 바람 덕분에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움직이고 어쩌면 기도하는 것처럼 숨을 쉬고 내쉬고…굴뚝을 청소하는 거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있고. 그래서 이번 작업이 더 보람찹니다."
4일이면 될 것 같았던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집트에는 없는 철골을 한국에서 운송하는 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사막에 철골을 설치하는 것도 어려워 10일이 걸려 완성됐다.
강익중 작업을 기획한 전시 기획자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는 "한 면으로 인쇄해서 붙이면 편 한데 한 글자 한 글자 5000명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작업하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살렸다"면서 "작업을 해 놓고 다음날이면 떨어진 작품들을 다시 붙이고 철골이 기울어져 있어 다시 세우며 마치 건물을 짓는 것처럼 공사한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사막에서의 작업은 대지미술의 진정성을 깨닫게 한다. "떨어지고 흔들리고 찢어지는 것도 대지미술의 일부"라는 것을.
올해 ‘포에버 이즈 나우’는 관람객들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예술을 통해 탐험의 여정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것을 주제로, 예술가와 관람객이 모두 현대의 고고학자가 되어 창의성을 도구로 삼아 평범한 것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도록 한다. 강익중은 이런 점을 반영해, 관객들이 작품 안에 들어와 바닥의 모래를 파내면 전시 작품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북마크를 발견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집트에 거주하며 올해 첫 한국 작가를 '포에버 이즈 나우'에 입성 시킨 이규현 대표는 "전 세계 미술인들과 관광객들이 한글신전에서 기뻐하고 감동 받는 모습을 보며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집트에 한국 작가를 알리겠다는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분이 좋고 주최측이 내년에도 한국 작가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며 뿌듯함을 보였다.
매년 1000만 명 넘게 방문하는 이집트 피라미드 사막에 한글을 꽃 피우고 K-콘텐츠의 힘을 보이고 있는 '포에버 이즈 나우' 전시는 11월16일까지 이어진다.
'포에버 이즈 나우' 아르데집트(Art D’Égypte)는?
행사를 주관하는 아르데집트는 나딘 압델 가파르가 설립한 이집트의 예술 문화 기획사로, 다양한 창작 예술에서 민간 및 공공기관과 협력하며, 이집트 문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집트 문화예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청중을 위한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2017년이집트 박물관에서 'Eternal Light', 2018년 마니엘 궁전에서 'Nothing Vanished, Everything Transformed',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장소인 카이로의 알-무이즈 거리의 4개 지점에서'Reimagined Narratives' 등의 전시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으며, 2021년부터는 국제 전시인 '포에버 이즈 나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기자 피라미드에서 매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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