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쫄지 마. 그렇다고 우쭐 대지도 말고 기죽지도 말고 당당하게 살아. 너희들은 사랑받고 있어!"
이 문구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지역 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를 맡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담당 교구장대리 이경상 주교가 진행하는 '1004 프로젝트'의 슬로건이자 불안한 미래에 위축된 MZ세대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을 함축한 메시지다.
지난 22일 이 주교 집무실 탁자에는 놓인 갖가지 색깔의 직사각형 열쇠고리마다 "쫄지 마"라는 문구와 하트(♥)가 수놓아져 있다. 이는 지난 20일 길음동 성당에서 열린 행사 '1004 프로젝트' 중에 참가자들이 받아 갔던 같은 모양의 열쇠고리다.
'1004 프로젝트'는 내년 7월28일부터 8월3일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행사 '젊은이들의 희년(성경에 나오는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 WYD'의 일환으로 WYD 지역위원회가 진행하는 행사다. 참가자는 만 15세(현재 중학교 3학년생)부터 35세까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다.
이 주교는 지난 6일부터 부활절 전 내년 3월23일까지 일요일마다 이 행사가 열리는 19지구에 있는 성당에서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만난다. 지금까지 흑석동, 목동, 길음동에 있는 성당을 찾았고 오는 27일에는 불광동 성당을 찾을 예정이다.
이 행사에서 이 주교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한 후 열리는 토크콘서트에서 '즉문즉답'을 통해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 주교는 이 행사 중 수능 시험에 뭐가 나올지, 동성애 문제 등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자기 슬로건처럼 절대 긴장하지도 "쫄지"도 않는다.
"청년들이 각양각색이라 질문들은 항상 새롭고 예상도 안 되고 그렇지만 각자 새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요. 난 원래 태생적으로 긴장은 안 해서…그 청년들은 사랑스러우니 사랑으로 접근해요. 내가 내세우는 슬로건이 '쫄지 마' 인데 내가 쫄면 안 되잖아. 그렇게 나와 이야기하면서 아이들도 '쫄지' 않기로 다짐하지."
'쫄지 마' 슬로건은 이 주교가 지난 8월 교황청이 공식 발표한 2027 서울 WYD 주제 성구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에서 착안했다.
"'용기를 내어라'하면 안 와 닿잖아요. 근데 '이걸 짧게 번역하면 뭘까' 하니 '쫄지 마. 넌 사랑 받고 있어. 우쭐 대지도 말고 기죽지도 말고 당당하게 살아'라는 메시지더라고요. 청년들한테 이걸 설명해 주고 이 열쇠고리를 나눠주니 청년들이 이 열쇠고리를 가방이든 어디든 달면서 좋아하더라고."
특히 이 주교는 '헬조선'이라 소리치지도 못하는 청년들에게 애정을 품고 있다.
이 주교는 "진학, 취업 그다음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미래에 많은 청년이 '배우자랑 교제하고 결혼해서 자녀 낳고 가정을 꾸려야지' 이런 블루프린트가 없으니 좌절하고 위축돼 있다"며 "이제 '헬조선이다' 하고 저항하지도 않고 그냥 아주 조용해졌는데 그게 더 큰 문제"라고 걱정했다.
이 주교는 물질주의를 심어준 기성세대를 문제 원인으로 꼽았다. "경쟁, 비교 우위, 서열주의를 청년들에게 너무 심어줬다"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상황인데도 청년들이 더 불행한 것은 우리 어른들이 행복의 기준을 너무 물질적인 것에 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젊은이들이 서로 비교하고 사회는 항상 첫 줄에 있는 젊은이들 외에 기억도 못 하고 자신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니 무기력해진다"며 "그래서 '그렇지 않아, 너희들은 소중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오는 2027년 서울 WYD를 통해 한국 사회에 이 메시지가 전해지리라 믿고 있다.
"천주교가 이 대회를 주최하지만, 이 대회를 통한 교세 확장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며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 공유하고 공유된 가치로 미래를 열기를 바란다. 사람을 함부로 비교하고 박살내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닌,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의미에서 이 대회를 연다"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 이 주교는 한국 사회에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함께해주길 당부했다.
"어른들은 청년들 소리에 '아이 됐어' 하면서 청년들을 가르치려고만 하고 윽박지르고 끌어당기려고만 했는데 청년들이 진짜 필요한 게 뭔지를 들어주고 현실적 대안을 같이 모색하고 동반해 줘야 해요. 어른들이 청년들을 도와서 기반을 구축해 줘야 청년들이 뭐든 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이를 이 대회를 통해 이 사회에 힘 있게 호소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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