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울려 퍼지는 자성의 목소리[휘청이는 여수국가산단③]

기사등록 2024/10/23 09:30:00

최종수정 2024/10/23 12:12:16

‘여수 석유화학산업 위기대응 협의회’ 구성…11월 첫 회의

여수국가산단 기업, 체질개선 통한 '고부가·친환경화' 시급

기업들, 관세 경감·규제 완화·기업 친화 분위기 조성 기대

[여수=뉴시스]  단일규모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화학단지 '여수국가산단'.(사진=여수시 제공) 2024.10.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여수=뉴시스]  단일규모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화학단지 '여수국가산단'.(사진=여수시 제공) 2024.10.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여수=뉴시스] 김석훈 기자 = 반백 년 대한민국 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맡아온 여수국가산업단지를 되살리려는 범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시급하다.

23일 여수 경제계에 따르면 최대 위기에 직면한 여수국가산단은 공급과잉, 수요회복 미흡 등 경쟁력 저하로 생산과 매출이 하향세를 기록하고 있다.

기존 범용소재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기업간 또는 기업 내 사업구조 조정 및 기존 사업의 고도화 추진이 극복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 합병과 부분 통합, 합작법인 설립, 매각 등을 통한 생산원가 및 생산량 조절이 필요하며 제조·공정 자동화, 인공지능(AI) 활용 생산시스템 디지털 전환 등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도 과제다.

무엇보다 범용소재 대신 첨단소재, 바이오 소재,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 새로운 사업으로 재편이 빠르게 이뤄져야 하며 고부가·친환경 핵심소재 진출을 위해서 원천기술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업 인수·합병(M&A)이나 기술개발 투자 확대를 통한 사업구조 개편도 위기 모면의 방편으로 떠오른다.
 

힘들지만 침묵하는 석유화학 공장

여수산단 입주 주요 사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적자를 보면서도 현재의 처지를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공해유발, 대형 사고 산단 등 꼬리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가동중단, 생산시설 매각, 구조 조정, 인수합병 시도 등 자구책에 나서면서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 지역 경제계 등을 통해 어려운 상황이 전해지면서 기업별 힘겨움도 알려지게 됐지만, 여전히 숨죽이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여수=뉴시스] 여수국가산단 국세납부 기여도.(사진=여수상의 제공) 2024.10.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여수=뉴시스] 여수국가산단 국세납부 기여도.(사진=여수상의 제공) 2024.10.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생산 공장이 여수산단에 있더라도 본사가 수도권에 있는 기업이 대부분이어서 순발력을 가미한 위기대응 능력도 의심받고 있다.

닥칠 위기를 직감하고, 수년전 부터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체질 개선에 나섰어야 한다는 지적 역시 피하기 어렵다.

“너무 늦었나…” 발 담그는 전남도· 여수시

여수산단 발 반 토막 난 세수확보에 비상이 걸린 전남도와 여수시가 뛰어들었다.

국가와 지역 경제의 중추 역할을 맡아왔던 국가산단을 이대로 두면 세수확보는커녕 두고두고 애물단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전남도와 여수시, 전남도의회, 여수시의회, 여수상공회의소, 여수산단공장장협의회, 한국석유화학협회, 한국화학연구원, GS칼텍스 등 기업체가 참여하는 ‘여수 석유화학산업 위기대응 협의회’가 구성된다. 오는 11월 여수상공회의소에서 첫 전략회의가 열린다.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정기명 여수시장, 협의체 위원 등 26명이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며 ‘협의회 발족식’, 위기대응 전략 수립 추진상황 발표‘, ’위기 극복 방안 논의‘등이 이뤄진다.

협의회는 앞으로 기획용역을 통한 전략 수립, 기업 애로·규제 개선 등 대정부 건의도 할 계획이다.
 
관세 경감, 전력·용수 등 안정적 공급,  환경규제·고압가스 인허가 간소화, 기업 구조 조정 지원, 대체 산업 전환, 유틸리티 지원 등이 포함된다. 협의회는 산단이 안정될 때까지 지속된다.

여수시는 지난 7월 석유화학 분야 전문가와 관련 기업, 전남도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여수산단 석유화학산업 위기대응 종합계획 수립 용역‘에 들어갔다.

시는 용역을 통해 석유화학산업의 위기를 진단하고, 정책 등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계획이다. 용역은 올해 말까지 추진된다.

또 지난달 전남도와 산단 기업을 찾아 ’여수 석유화학산업 위기대응 전담팀(TF)’을 구성했다.

전담팀(TF)은 규제개선 분과 및 인프라 조성·인력양성 분과로 나눠 분야별 현장 중심의 정책발굴과 규제개선, 기업지원 등을 추진한다.

[여수=뉴시스] 여수국가산단 여수지역사회 기여도.(사진=여수상의 제공) 2024.10.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여수=뉴시스] 여수국가산단 여수지역사회 기여도.(사진=여수상의 제공) 2024.10.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정부도 현장의 어려움을 청취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6월 여수국가산단에서 차관 주재 간담회를 갖고 주요 기업별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산단 주요 사는 정부가 관세를 조절해 줄 것과 규제 완화를 건의했다.

공장가동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동력원인 스팀이나 용수, 전기 등 에너지(유틸리티)를 활용(판매 및 교환)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국가의 정책적 노력을 통해 각 사별 처해있는 특수상황에 맞도록 나서 달라는 것이다.

고부가·친환경화 등 구조 전환 시급

여수산단 석유화학 기업의 위기 극복은 전남도나 여수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가 경제의 주춧돌을 맡아온 석유화학 산단의 체질개선은 무엇보다 고부가가치 화학제품 생산 및 정밀화학 등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도록 사업구조 전환이 우선이다.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 중립실천 등을 염두에 둔 산단 개조 및 전환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이 실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담당 지자체인 여수시의 지원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여수산단 기업들은 안산동과 학동, 소호동 등에 위치한 사택의 종 상향을 통한 신규 건축을 추진했다가 포기했다.

한화솔루션은 사택 부지에 일반 분양이 가능한 아파트 건축을 추진하면서 1000억원 상당의 사회간접자본(SOC)을 시에 제공할 의사를 내비쳤으나 무산됐다.

롯데케미칼, GS칼텍스도 한화솔루션의 협상을 주시하면서 사택 부지 활용을 기대했다가 결국 모두 포기했다. 인허가권을 쥔 여수시와의 협상도 협상이지만, 특혜성이라는 일부의 반대 여론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여수산단 기업들이 석유화학 공장의 적자를 만회하려는 노력에 지역사회의 협조가 더해지면 침체국면을 다소 지연시킬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산단 관계자는 “지은지 수십 년 된 낡은 사택을 헐고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은 건설 경기 부양과 지역경제 활력, 산단 기업의 회생 기회를 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 됐다”면서 “이런 것들도 하나의 방안으로 깊이 고려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팔 걷어붙인 여수상공회의소 등 경제계

여수상공회의소는 지난 8일 여수시와 상의를 포함한 33개 기관·단체가 참여하는 '여수기업사랑협의회' 위원 초청 간담회를 통해 위기의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여수국가산단과 여수지역 경제의 어려운 상황을 공유하고,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협력과 지지를 공식화했던 자리다.

한문선 여수상의 회장은 “여수국가산단의 지속적인 성장은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자, 지역소멸을 막는 중요한 열쇠"라며 ”산단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업, 지자체, 시민 모두가 하나 된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수산단의 위기를 심각히 받아들인 기업사랑협의회는 여수상의가 추진하는 지역 경제 활성화 사업에 각 단체가 협력하겠다는 뜻을 결의했다. 상의는 여수신기업가정신 5대 과제를 선정해 실천에 들어갔다.
 
[여수=뉴시스] 8일 여수상공회의소에서 '기업사랑협의회 간담회가 열린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여수상의 제공) 2024.10.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여수=뉴시스] 8일 여수상공회의소에서 '기업사랑협의회 간담회가 열린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여수상의 제공) 2024.10.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국가산단의 미래는 여수의 미래

여수국가산단은 1967년 여천공업기지 및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여수공장) 기공 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오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9월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규모의 경제 위기 등 두 차례의 큰 파도를 넘었다.

코로나19가 범유행 했던 3년을 버텨온 여수산단 석유화학 공장들은 과거 두 차례의 위기와 전혀 차원이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경제전문가들은 두 차례의 위기가 외부적 요인이었다면, 이제는 구조적이고 내부적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시간이 흘러 경기가 좋아지면 생산과 판매가 보조를 맞추고 매출이 향상되는 과거와는 사안 자체가 다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내놨다.

단일규모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화학 단지 인 여수국가산단은 300여 업체가 입주해 가동 중이며 작년 말 기준 84조원의 생산과 318억달러의 수출, 2만5000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여수시가 국가에 내는 국세는 2023년 3조4000억원으로 전남도가 낸 국세 총액 5조5000억원의 60.7% 차지했다.

여수시의 지방세 징수는 2020년 2800억원에서 2023년 4000억원으로 늘었다. 이 중 48.5%인 1940억원이 여수산단에서 징수됐다. 여수시의 살림살이를 국가산단이 도맡아온 셈이다.

여수산단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석유화학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데다, 최대 수출국이던 중국의 석유화학 공장 증설 및 자급률 100% 수준 도달 등으로 더이상 중국 수출이 어려워졌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국제정세 불안 등이 더해 여수산단 기업의 영업 손실로 이어졌다.

올해 7월 여수시 지방세 징수액은 1813억원으로 지난해 7월 2958억원에 비해 47.8%가 줄었다. 1년 사이 세수 격차가 1141억원에 달했다. 회복기 어려운 직격탄이 여수 지역경제를 강타했다.

황금알을 낳던 여수산단의 처지에 뒤늦은 자정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구조적인 산업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하는 새로운 기업문화 조성 및 기업 사랑 운동’이 전개될 전망이다.

‘여수산단이 곧 우리의 자산’이라는 인식의 전환도 절실해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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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울려 퍼지는 자성의 목소리[휘청이는 여수국가산단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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