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사적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5세기 금관가야의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이 나왔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금관가야의 왕궁 또는 왕성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봉황대 구릉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여러 차례 이뤄졌다.
그간 조사를 통해 배가 드나드는 접안시설, 창고 건물터, 야철터, 건물터, 조개무지, 환호, 토성, 지석묘 등 청동기시대부터 금관가야에 이르는 유적이 확인된 바 있다.
국가유산청은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가 봉황대 구릉 동편 경사면과 평지 조사 과정에서 대지 확장을 위한 대규모 토목공사가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대규모 패각성토층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패각성토층는 봉황대 구릉 북동편 저지대를 매립해 조성한 것이다. 지반 강화를 위해 다량의 조개껍질을 섞어서 경사지게 켜켜이 다져서 쌓은 것이 특징이다.
확인된 최대 깊이는 4m다. 길이는 주변 봉황토성 성벽까지 이어질 것을 고려하면 100m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토 방법은 주로 넓은 대지를 조성할 때 이용된다. 경주 황룡사터와 부여 금강사터 등 삼국시대 절터에서 단편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봉황동 유적 성토층은 이들 유적보다 조성 시기가 앞서고 조개껍질을 섞어서 사용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기존 탐색 트렌치(길쭉하게 판 홈)로 확인한 토층 단면만으로 경사 성토 사실을 제한적으로 파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밑지름 6~8m 내외, 높이 1m 내외 둔덕을 쌓고, 이를 중심으로 여러 개 동심원 모양 성토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평면 구조가 새롭게 밝혀졌다.
국가유산청은 "과거 봉황대 구릉 주변 도시개발 과정에서 일부 확인됐던 봉황토성의 토축 성벽 조사 결과와 이번 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 보면, 5세기 대에 봉황대 구릉 전체를 둘러싸는 둘레 1.5㎞ 정도 토축 성벽 축조 과정에서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여진다"고 추정했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오는 24일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현장에서 열리는 설명회에서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
이번 설명회에서는 대형주거지와 그간 발굴조사를 통해서 수습된 중요 유물도 공개된다.
대형주거지는 4세기 대에 조성된 것으로 지난 2017년 일부 공개된 바 있다. 그 후로 추가 조사와 연구를 거쳐 내부 아궁이 시설과 주거지 벽체의 세부 구조를 새로 밝혔다.
출토 유물은 당시 왕성 내 생활과 의례, 음식 문화, 생산 활동 등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각종 생활 토기, 사슴·고래·상어 등 각종 동물뼈, 복골·모형토기·토우 등 의례행위 관련 유물, 동물뼈로 만든 화살촉·바늘·칼 손잡이 등 생활 공구로 사용된 골각기 유물, 철광석·송풍관 등 야철 작업 관련 유물이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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