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숙녀분, 우리 미술관 옥상 정원은 처음인가요?” 거대한 건물 안에서 직진과 좌회전, 우회전을 몇 번 하고나서 도착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이 지긋한 경비원이 물었다.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일 거예요. 올라가면 뉴욕을 만날거니까” 가벼운 잡담 끝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4층에 도착하자 반대편 문이 열렸다.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서야 경비원의 설명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옥상정원을 차지한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 앞에 넓게 펼쳐진 센트럴 파크와 뉴욕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관람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서쪽 끝의 난간으로 몰려든다. 미국 미술관의 자존심, 메트로폴리탄의 옥상 정원이다.
메트로폴리탄의 아이리스와 B.제럴드 칸토 옥상 정원(Iris and B. Gerald Cantor Roof Garden)은 매 년 그 공간을 차지하는 주인공이 바뀐다. 이른바 ‘옥상정원 커미션’인데, 젊은 작가에게 기회를 준다. 올해는 페트리트 할릴라지(Petrit Halilaj, 38) 작가가 선정됐다.
할릴라지는 코소보에서 태어나 베를린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활동한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코소보는 1998년 3월부터 전쟁에 휘말렸다. 이른바 ‘코소보 사태’로 잘 알려진 내전이다. 신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과 세르비아 정부군 사이 벌어진 충돌로, 이듬해 6월까지 이어졌다. 작가는 “우리를 지켜야하는 경찰과 군대가 자행하는 폭력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지만, 그것이 충격임을 인식할 때까지도 한참 걸렸다”고 회상한다. 1999년에 알바니아 난민 수용소로 들어오면서 유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옥상정원을 차지한 할릴라지의 작업 ‘ABETARE’(알바니아어 쓰기 교과서. 우리로 치면 한글 ‘가나다’다.)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집단적 기억이 뒤섞여있다. 가장 큰 조형물은 거미 모양의 철제 조각이다. 동그란 눈과 세모난 입이 마치 웃는 얼굴처럼 보이고, 다리는 균형을 잡고는 있지만 상당히 어설프다. 마치 어린아이가 낙서해 놓은 것을 3D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그리고 이 같은 짐작은 단순한 느낌만이 아니다. 실제로 작가는 어린아이의 낙서를 갈무리해 이를 조형물로 만들었다.
학교 책상 위 낙서 속 세상에 들어간 듯
거의 천 개 가까운 낙서들을 수집하면서 그 안에서 당시의 지배세력에 대한 날카로운 목소리도 읽어낸다. 좌절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그리고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맑은 희망도. 작가는 루닉에서 수집한 낙서에 다른 유고슬라비아 초등학교에서 얻은 낙서를 더해 이번 작품을 완성했다.
간단하게 선으로만 완성된 드로잉이 평면에서 튀어나와 입체가 됐다. 면이 없으니 뒷 배경이 훤히 보인다. 다른 조각들과 겹쳐보기가 가능하다는 것도 할릴라지 작가가 의도한 바다. 삼각형 기둥이 뾰족한 어설픈 집은 아늑하기보다 개방된 느낌이고 그 사이로 어린이들이 예쁘다 혹은 멋지다 생각했던 온갖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새, 꽃, 졸라맨(?)으로 표현된 사람, 아메바 등등. 거대한 사이즈 덕택에 관람객들은 조각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학교 책상 위 낙서 속 세상에 들어간 듯한 착각마저 든다.
스벤 스피커 평론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작가의 전기와 연결된 일련의 2차원 기호와 문자인 옥상에 설치된 작품은 작가의 자화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우리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릴 때, 우리의 손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얼굴, 즉 우리 자신의 윤곽을 그리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맹목적인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관객이 보는 것은 작품 그 자체가 아니다. 작품 사이 뚫린 공간에서 맨해튼 도시를, 센트럴 파크를, 그리고 하늘을 마주한다.
낙서가 새겨진 책상은 ‘낙서’라는 컨텐츠 때문이 아니라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며 그 존재 자체로 역사를 증명하고 가치가 있는 것처럼, 옥상 정원도 작품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약간 다른 시선의 ‘뉴욕’을 만날 수 있어서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비원의 코멘트가 다시 떠오른 이유다.
제1 경제 대국의 자존심, 메트로폴리탄
캐서린 울프, 제이콥 로저, 루이진 해브마이어, 로버트 리먼 등 재벌 컬렉터들이 미술관 초기시절 작품을 기증하고 기금을 마련하는 등 미술관의 기초를 다졌다면 폭발적 성장은 모건 스탠리의 J.P. 모건의 기부 아래 이뤄졌다. 금융재벌이었던 그는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보석, 고서, 가구에도 관심이 많아 방대한 컬렉션을 이뤘다. 사망 당시 모건의 컬렉션 평가액은 약 5000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13억달러, 한화 약 1조 7200억 원), 개인 자산은 6800만달러(현재가치 18억달러)였다. 금융자산만큼이나 컬렉션에 진심이었던 것.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모건 주니어는 대부분의 컬렉션을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했다. 모건의 업적은 단순히 기부에만 있지 않다.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며 유능한 큐레이터를 초대하는 등 미술관의 질적 성장을 이끌었다. 해외 작품 대여와 교류도 장려하면서 폭넓은 컬렉션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그의 주요 업적이다.
이집트 미이라부터 팝아트까지, 메츠가 주목한 젊은 작가는
이렇게 거대한 미술관에 오면 가장 궁금해 지는 것이 과연 이들이 관심을 끈 동시대미술작가는 누구인가다. 미술사를 집대성한 미술관이 선택한 작가라면 어떤 지점이 다를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답을 알고 싶다면 메자닌층에 위치한 컨템포러리아트 전시실에 들러야한다. 전시 기획에 따라 작품이 바뀌긴 하지만, 거장들의 작품 사이사이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올 가을엔 미셸 아르미타지(Micheal Armitage, 40), 살만 투르(Salman Toor, 41), 다나 슈츠(Dana Schutz, 48), 싸이 개빈(Cy Gavin, 39)의 작품이 걸려있다. 차례로 화이트 큐브, 루링 어거스틴, 데이비드 즈위너, 가고시안 등 대형 갤러리와 전속하는 작가들이다. 루이진 해브마이어가 1900년대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대거 사들이고, 이를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했다. 드가와 모네 작품의 상당수가 해브마이어의 기증품이다. 오늘 이 전시장에 걸린 작품이 반세기의 시간이 지난뒤, 제 2의 드가와 모네가 될 수 있을까? 결코 그 답은 알 수 없다.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몫은 그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직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