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과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 심포지엄
[서울=뉴시스]이지영 기자 = 전세계 3위 규모로 성장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법인 투자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허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현재와 같이 개인투자자 위주의 시장으로 머물다 보면 디지털 금융 전환이 가져올 격변기에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11일 서울 여의도 신한펀드파트너스에서 열린 '디지털 자산과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 심포지엄에서 "국내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개인투자자 중심의 시장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며 "이를 더 제고하기 위해 전통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선별적 법인 투자 허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투기 수요가 큰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양성화를 위해서다.
이 교수는 "가격 위험 헤지가 핵심인 가상자산 시장에서 건전한 파생상품시장 육성은 장기적으로 당면한 과제"라며 "이미 많은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선물 시장을 투기성이 아닌 위험관리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재 국내에서 금지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발판으로 기관 투자자들의 가상자산 사업 진출을 도모해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금융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홍콩의 정책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며 "이미 전세계적으로 전통 금융 기관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시작으로 금융의 디지털화 및 토큰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은 지난 4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한 바 있다. 미국이 지난 1월 승인한 이후 3개월 만의 일이다.
법조계에서는 그간 정부의 비명시적 규제로 법인 투자와 현물 ETF가 제한됐던 만큼 정책 기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날 함께 참석한 금융위원회 출신 이한진 김앤장 변호사는 "현행 자본시장법상 가상자산은 '경제적 현상'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가상자산이 처음 거래되던 때와 달리 현재는 국내외 가상자산 거래소 등을 통해 실시간 거래되고 가격이 형성되고 있어 합리적이고 적정한 방법에 의하여 가격이나 지표의 산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금융위원회가 비트코인 현물 ETF 금지 이유로 언급했던 '비트코인의 기초자산성 문제'를 반박한 것이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에 해당하는 상품은 ▲금융투자상품 ▲통화 ▲일반상품 ▲신용위험 ▲그밖에 경제적 현상 등에 속하는 위험으로서 합리적이고 적정한 방법에 의하여 가격·이자율·지표·단위의 산출이나 평가가 가능한 것 등이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 기조가 전환한다면 법인과 기관투자자의 가상자산 투자가 가능해진다는 전망이다.
이 변호사는 "지난 2017년 정부가 일종의 유권해석으로 가상자산을 화폐나 통화, 금융상품으로 보지 않던 때와는 현재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비트코인의 현물 거래가 이미 활발하게 이뤄지는 이상 오히려 이를 '금융투자상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상자산을 금융투자상품으로 본다면) 일반기업과 기관 투자자 등이 고유재산운용 차원에서 가상자산에 투자(Prop trading)하는 것이 허용된다"며 "지난해 12월 대검찰청이 '검찰청 명의' 계정으로 가상자산을 매각해 국고 귀속을 완료한 것처럼 자금세탁방지제도(AML·CFT) 의무 이행을 전제로 법인의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처럼 가상자산 선물·옵션 거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이 변호사는 "(정책 기조 전환 시)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옵션 거래도 가능해진다. 정부는 시장 안정화를 위해 이를 투기 수단으로만 볼 게 아니라 어느 범위까지 허용할지 논의해야 한다"며 "주식시장에서 필수 의무 과정을 수료한 개인 투자자에게 공매도를 허용하는 것처럼, 특정 기준을 충족한 전문적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가상자산 연계 선물·옵션 서비스를 허용하는 것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업계에서는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가 발언을 남겼다. 김 대표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특이하게 리테일만으로 전세계 3위 규모까지 성장했다"며 "이런 에너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전통 금융시장과 결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이 좋은 방향과 대답을 제시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기획재정부 제1차관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며 거시·금융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다. 특히 지난 2018년 금융위 부위원장 시절 가상자산 정책을 수립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는 안병남 금융감독원 팀장과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박사, 이주현 빗썸 전략법무실장, 황순호 두나무 이사 등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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