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알아야 섞일 수 있어요"…이주 아동 돌보는 작은 도서관

기사등록 2024/10/09 07:00:00

최종수정 2024/10/09 11:20:15

이주배경아동 한글 가르치는 '바라카작은도서관'

"한글은 단순 일상 사용 넘어 기본적 학습 토대"

"섞여 살려면 한글 필수…섞여야 편견도 줄어요"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8일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바라카작은도서관에서 이주 배경 아동들이 한글을 공부하고 있다. 2024.10.08.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8일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바라카작은도서관에서 이주 배경 아동들이 한글을 공부하고 있다. 2024.10.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우리 집에 하얀 털을 가진 귀여운 강아지가 왔습니다."

느리지만 또박또박 한글을 말하는 아이샤(8)의 목소리가 책상 앞을 나지막이 채웠다. 아이샤는 '강아지 하양이' '나' 같은 등장인물 아래에는 힘주어 밑줄을 그었다.

이어진 선생님의 질문. "이 글에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일까?" 분홍색 히잡을 쓴 아이샤는 고개를 잠깐 갸웃하더니 자신 있게 '엄마'를 답으로 골라냈다.

그 옆에는 다른 초등생 3명이 앉아 저마다의 '표준 한국어 익힘책'을 풀고 있었다. '아빠의 누나를 뭐라고 할까요'라는 문항에 방글라데시에서 온 지 3년이 된 혜경(9)은 "너무 쉽잖아요"라며 '고모'를 써냈다.

뉴시스는 9일 한글날을 맞아 전날 오후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바라카작은도서관'(바라카)을 찾았다. 바라카는 이주 배경 아동에게 한글과 수학을 가르치는 비영리 기관이다.

2018년 7월에 문을 열어 6년째 이주 배경 아동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 2018년은 예멘 출신 난민 516명이 제주도로 유입된 해였다.

이때 들어온 난민 중 어린 두 자녀를 둔 한 가정이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이 있는 이태원을 찾아왔고, 이곳에서 '이주민가정지원센터'를 운영하던 김기학 대표가 이들의 초등학교 입학과 기본적인 학업을 위한 한글을 가르쳤던 게 지금의 바라카의 시초가 됐다.

시간이 흘러 외국인에게 무료로 한글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바라카는 난민뿐 아니라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 배경 아동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6년간 수십명의 이주 배경 아동들이 바라카를 거쳐 갔으며, 지금도 하루에 20명 내외의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모로코 등 아랍권 배경을 가진 아동들이 방과 후 바라카를 찾아 한글을 배우고 있다.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8일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바라카작은도서관에 이주 배경 아동들이 그린 '우리 독도'와 '수단 사용 설명서'가 붙어있다. 2024.10.08.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8일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바라카작은도서관에 이주 배경 아동들이 그린 '우리 독도'와 '수단 사용 설명서'가 붙어있다. 2024.10.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어린 시기 한글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한글이 아동들의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것을 넘어, 앞으로 있을 학습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학습 한국어가 안 되면 다른 과목 점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는 논리력을 시험할 목적으로, 대부분 한국어로 돼 있다. 문제를 해석하지 못하면 풀 수가 없는 것인데, 문제 해석은 단순히 한글을 읽는 것과는 다르다. 학습 한글 교육이 없으면 아이들은 수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부족한 학습력을 채우지 못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아이들은 점차 학업을 포기하게 되고, 학업을 포기한 아이들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노동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김 대표 부부의 교육 철학도 바라카가 이토록 한글 교육에 힘을 쏟는 이유다.

김 대표의 아내이자 이중언어 교사로 바라카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이현경씨는 "아이들은 그 사회에 계속 섞여 들어가야 한다. 섞여 살아야 서로에 대한 편견도 줄고 서로 배우는 것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한글이 필수"라고 말했다.

실제 이곳에서 한글을 배운 이주 배경 아동들은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배경 아동인 무사위(11)는 "4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담임 선생님이 '너희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니'라며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대하려고 했다. 기분이 너무 나빴다"며 "바라카에서 6살부터 한글을 배웠어서 '다른 친구들이랑 똑같이 대해달라'고 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재 바라카는 운영 취지에 공감하는 교회와 일부 기업, 개인들의 후원으로 월세, 관리비, 아이들의 간식비 등을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 후원액이 넉넉지 않아 형편이 어려운 이주 가정에 교육비는 물론 분유나 기저귓값 등 생필품을 지원하기에도 빠듯하다.

김 대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등록 이주 가정과 난민 가정의 아이들은 지금도 보육비가 없어서 유치원을 가야 하는 시기에 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주 배경 아동이 겪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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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알아야 섞일 수 있어요"…이주 아동 돌보는 작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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