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청, 옛 광주교도소 출토 유해 유전자 정보 이관받아
4·3 휘말린 민간인들 전국 형무소 이감 기록…광주 70여 명
대전 골령골 발굴 과정 도민 희생자 확인…조사 범위 확대
[광주·제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지난 2019년 옛 광주교도소에서 출토돼 5·18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들과의 연관성이 점쳐졌던 무연고 유해 261구의 정체가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4·3 직후 제주도민들이 전국 각지 형무소로 끌려간 내용이 확인된 가운데 광주교도소에서도 관련 재소자가 70여 명이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파악되면서 도외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가 확대되고 있다.
5일 제주도청 등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에서 출토된 무연고 유해 261기의 유전자 정보를 지난 6월 제주도청에 이관했다.
옛 광주교도소에서는 지난 2019년 법무부의 솔로몬 로(law)파크 공사 도중 무연고 분묘 개장 과정에서 유해 261기가 콘크리트함에 담긴 채 발견됐다.
과거 광주교도소 일원에서 5·18 희생자 암매장이 이뤄졌다는 중복 증언과 기록이 이어져 온 만큼 당시 발견된 유해들에 대해 여태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5·18 행방불명자일 가능성이 떠올랐다.
4·3 직후 제주도민들이 전국 각지 형무소로 끌려간 내용이 확인된 가운데 광주교도소에서도 관련 재소자가 70여 명이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파악되면서 도외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가 확대되고 있다.
5일 제주도청 등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에서 출토된 무연고 유해 261기의 유전자 정보를 지난 6월 제주도청에 이관했다.
옛 광주교도소에서는 지난 2019년 법무부의 솔로몬 로(law)파크 공사 도중 무연고 분묘 개장 과정에서 유해 261기가 콘크리트함에 담긴 채 발견됐다.
과거 광주교도소 일원에서 5·18 희생자 암매장이 이뤄졌다는 중복 증언과 기록이 이어져 온 만큼 당시 발견된 유해들에 대해 여태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5·18 행방불명자일 가능성이 떠올랐다.
5·18 사적지 22호인 옛 광주교도소 부지는 1980년 5·18 당시 3공수여단과 20사단 등 광주 시민들을 진압하러 온 계엄군이 주둔한 곳이다.
3공수는 1980년 5월21일 전남대 정문에서 진행된 시위 과정에서 학생과 시민들을 무력 진압, 오후 4시께 광주교도소로 주둔지를 옮기며 시민 120~150여 명을 지붕이 있는 트럭 수 대에 태워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짐칸에 최루탄을 던져넣어 시민 일부가 질식해 숨졌고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계엄군의 증언도 나오면서 3공수의 교도소 내 암매장 의혹이 크게 불거졌다.
20사단은 5월24일 정오께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는 3공수여단과 교대해 5월 27일 새벽까지 교도소에 주둔했다. 5·18 당시 광주교도소 교도관들이 기록한 '광주 사태 시 소요 체포자 치료현황' 문건에는 20사단 주둔 과정에서도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기록과 증언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만행들이 저질러졌는지는 공식 파악된 바가 없다.
이런 내용들을 토대로 그간 무연고 유해들이 계엄군의 만행 과정에서 이름 없이 희생된 5·18 행방불명자들일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나 무연고 유해와 5·18 행불자 가족과의 유전자 정보 대조 결과 누구도 일치하지 않으면서 정체가 미궁에 빠졌다.
3공수는 1980년 5월21일 전남대 정문에서 진행된 시위 과정에서 학생과 시민들을 무력 진압, 오후 4시께 광주교도소로 주둔지를 옮기며 시민 120~150여 명을 지붕이 있는 트럭 수 대에 태워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짐칸에 최루탄을 던져넣어 시민 일부가 질식해 숨졌고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계엄군의 증언도 나오면서 3공수의 교도소 내 암매장 의혹이 크게 불거졌다.
20사단은 5월24일 정오께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는 3공수여단과 교대해 5월 27일 새벽까지 교도소에 주둔했다. 5·18 당시 광주교도소 교도관들이 기록한 '광주 사태 시 소요 체포자 치료현황' 문건에는 20사단 주둔 과정에서도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기록과 증언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만행들이 저질러졌는지는 공식 파악된 바가 없다.
이런 내용들을 토대로 그간 무연고 유해들이 계엄군의 만행 과정에서 이름 없이 희생된 5·18 행방불명자들일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나 무연고 유해와 5·18 행불자 가족과의 유전자 정보 대조 결과 누구도 일치하지 않으면서 정체가 미궁에 빠졌다.
이러한 상황에 지난 2023년 대전 골령골 유해 발굴 과정에서 과거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기록이 남은 제주 4·3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옛 광주교도소 유해의 정체를 둔 새로운 추론이 제기됐다.
대전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부터 7월17일사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와 대전·충남지역에서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돼 묻힌 곳이다. 지금까지 유해 1441구가 발굴됐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고(故) 김한홍(1923년생)씨다. 제주시 북촌리 출신으로 4·3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마을에서 떨어진 밭에 숨어 지내다 1949년 1월 ‘자수하면 자유롭게 해준다’는 소문에 자수했다. 하지만 주정공장수용소에 수용된 후 가족과 연락이 끊겼고, 같은 해 7월4일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아 대전형무소에 복역한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에 과거 4·3 당시 도내에서 군경에 붙잡힌 민간인들이 전국 각지 형무소로 이감됐다는 기록도 나오면서 옛 광주교도소 출토 무연고 유해와의 접점이 만들어졌다. 제주에서 광주로 이감된 4·3 관련 재소자 수는 7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추산된다.
제주도청은 이관받은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 한 구당 최소 6~7개월이 걸리는 만큼 구체적인 신원 파악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점쳐진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4·3 직후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도민 규모는 3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골령골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1441기 중 79기를 대상으로 진행한 유전자 정보 감식 과정에서 기적적으로 희생자가 발견됐다"며 "도민들이 당시 광주교도소로도 이감된 기록도 있어 한 명이라도 희생자를 더 찾기 위해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