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4월 동대문구 병원서 사고
가로 80㎝·세로 30㎝ 3층 화장실서 추락
법원 "안전장치 설치·추락 방지 의무 有"
다만 책임 범위 20%…"1억5천 지급해야"
[서울=뉴시스]이태성 기자 =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환자가 화장실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다 추락해 다쳤다면 병원에 책임이 있을까? 법원은 병원에 일부 책임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는 지난 2019년 4월부터 서울 동대문구 B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경도 지적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등의 증상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다.
그러다 2020년 4월. A씨는 적응훈련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이 병원 3층에 있는 재활훈련실에 가게 됐는데, 그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한 뒤 같은 층 남자 화장실로 향했다.
A씨는 가로 80㎝, 세로 30㎝의 창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다 주차장으로 추락했다. 추락 후 병원 측의 신고로 119 구급대가 B병원에 도착했고, A씨를 다른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이 사고 이후 A씨는 등뼈와 허리뼈 등을 다치고 골절상을 입었다. 현재는 척수 손상에 의한 하지 불완전마비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A씨의 가족은 B병원의 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B병원 원장이 진료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로서 병원의 화장실 창문에 안전장치를 설치해 환자가 추락하지 않도록 방지할 의무가 있었다는 취지다.
A씨가 이 사고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퇴원을 요구했던 만큼 탈출 시도를 예견하고 방지할 주의의무가 병원에 있었으며, 사고 이후 신속한 응급조치와 전원조치를 다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도 주장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이창열)는 지난 7월11일 병원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고, 병원의 의료진 및 직원들의 사용자로서 B병원 원장이 A씨에게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증거를 종합하면 B병원이 환자의 탈출 시도에 대비해 정신병원으로 갖춰야 할 안전장치 등을 설치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이로 인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병원은 사고 이후 창문에 탈출 방지 시설을 갖췄는데 이를 사전에 설치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고 무렵 A씨가 다소 불안한 상태를 보였던 만큼 의료진은 A씨를 보다 주의 깊게 관찰해 충동 행동을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기록상 사고 이후 119 신고까지 10분 이상이 지나지 않은 점, 병원 도착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조치에 특별한 지연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사고 이후 적절한 응급조치가 없어 손해가 커졌다는 원고 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함께 A씨가 지적장애가 있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사고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은 A씨에게 있는 점을 고려해 전체 손해의 20%로 책임 범위를 제한했다.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일실수입(사고가 발생해 피해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과 치료비 등을 산정해 A씨에게 총 1억5470만원의 손해액과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B병원 원장에게 명령했다. 또한 A씨의 부모에 대해서는 각각 100만원씩의 위자료가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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