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의 가족'으로 6년만에 영화 복귀
평범한 남자 재규 맡아 "현실 캐릭터 처음"
"나를 투영한 캐릭터…자유로워지는 느낌"
"나조차 내게 새로움 못 느낀 시절 있었어"
"과작하는 배우? 앞으론 다작 하려 한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배우 장동건(52)은 비현실적이었다. '조각'이라고 불리는 외모에 관한 애기만은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무정부주의자, 건달, 테러리스트, 킬러 등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캐릭터로 꽉 차 있다. 이런 사정은 드라마로 넘어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대체로 판타지에 기대고 있었다. 그런 장동건에게 새 영화 '보통의 가족'(10월16일 공개)은 말 그대로 전환점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이 변곡점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정말 오랜만에 저에 대한 기대가 생깁니다."
"앞서 영화를 할 땐 대체로 제가 아닌 것에서 무언가를 찾고 상상해서 만들어 가는 연기를 했습니다. 드라마에선 일상적인 연기를 하긴 했지만, 그 표현은 보편적인 것들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제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서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연기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 자유로워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기대가 돼요."
장동건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연기를 하는 마음가짐이 바뀌었다"고 했다. '보통의 가족'에서 그가 맡은 건 소아과 의사 '재규'. 상류층 엘리트라는 걸 빼면 평범한 남자다. 아내 연경(김희애)과는 사소하게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겪는 남다를 게 없는 부부다. 사춘기 아들을 어찌할 줄 모르는 난감함은 또래 자식을 둔 아빠와 비슷하고, 치매 노모를 모셔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대체로 선하지만 때론 위선적이기도 한 모습은 분명 인간적이다. 장동건은 "이런 재규를 정말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사람이랄까요." 장동건은 재규를 조금 비겁하고, 약간 찌질하고, 형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고, 내 선택이 어떤 유불리를 가져올지를 재보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헸다. "저도 아이를 키우고 있잖아요. 또 재규와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면서 삽니다. 나를 투영해서, 나에게서 끄집어낸 연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장동건은 이 영화 제안을 받은 뒤 아내인 배우 고소영이 했던 말을 전해줬다. "재규가 저한테 딱 어울린다더라고요."(웃음)
'보통의 가족'은 보통 사람 재규에게 보통 아닌 선택을 마주하게 한다. 아들 시호(김정철)가 사촌누나 혜윤(홍예지)과 함께 노숙자를 폭행해 죽음 직전으로 몰고 간 것. 이 장면을 담은 CCTV 영상이 온라인에서 퍼지자 경찰은 범인 추적에 나선다. 하지만 영상 외엔 단서가 없고, 만약 노숙자가 사망한다면 완전 범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일을 저지른 게 시호라는 걸 안 재규는 이제 결정해야 한다. 자수를 시킬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앞날을 위해 사건을 묻어둬야 할까.
"네 배우(장동건·설경구·김희애·수애) 모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촬영 내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에 관해 대화했습니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고, 지금까지도 고민하고 있어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물론 어떤 게 올바른 것인지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자식 앞에서는 그 신념을 지키긴 쉽지 않을 겁니다. 아들 시호가 울면서 반성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찍을 때, 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 역시 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고민하며 사는 아빠이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이번 작품은 제 안을 들여다보는 영화였습니다."
장동건이 영화를 내놓는 건 2018년 '창궐' 이후 6년만이다. 흥행작을 내놓은 건 더 오래됐다. '마이웨이'(2011)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처럼 200만명 가량 불러 모은 작품이 있긴 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2004) 이후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영화는 없다. 그는 "용기가 부족했다"고 자평하면서 "나조차도 나에게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이젠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허진호 감독님과 2012년에 '위험한 관계'를 찍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언제까지 대표작이 '태극기 휘날리며'이고, 언까지 '8월의 크리스마스'인 거냐고요.(웃음) 이번에 다시 허 감독님과 함께하게 됐으니까 이번 작품이 저희 두 사람의 대표작이 되면 좋겠습니다."
1992년에 데뷔했으니까 데뷔한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적지 않은 영화·드라마에 출연해왔지만, 활동 기간을 생각해보면 필모그래피가 단출해 보이기까지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여전히 그의 대표작인 건 아마도 그가 과작을 한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장동건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예전엔 플랫폼이 적었고, 작품 수도 한정적이다보니까 한 작품이 잘 안 되면 또 다른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너무 신중했죠. 80% 맘에 들어도 20% 걸리는 게 있으면 안 했달까요. 그런데 최근엔 달라졌죠. 플랫폼부터 정말 다양해졌으니까요. 이젠 장점을 더 보려고 합니다. 필모그래피를 꽉 채워 나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더 늦어서 후회하기 전에 많이 하려고 합니다."
최근 장동건은 사생활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다. 그의 공백기가 길어진 건 이 영향도 있다. 대중 앞에 적극 나서지 못한 그 시기에 촬영 현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고 했다. "대사 한 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습니다. 당연한 건 없으니까요.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제가 변했다는 뜻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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