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 11명 중 10위 기록…"살아남는 게 목표"
[파리=공동취재단] "제가 센강을 헤엄친 최초의 한국인입니다."
양팔 없이도 센강을 건넌 장애인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국가대표 김황태(47)가 밝게 웃었다.
김황태는 지난 2일(한국시각)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PTS3 등급 경기에서 1시간 24분 01초를 기록, 11명 중 10위를 차지했다.
수영 750m, 사이클 20㎞, 육상 5㎞ 코스를 달린 그에게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센강을 헤엄쳐 나오는 것만으로도 목표를 이뤘기 때문이다.
김황태는 "사전 연습 때는 유속이 느렸는데, 본 경기 때는 더 빨랐다. 모든 영법을 써봤는데 답은 배영이었다"고 말했다. 자유형과 평영에 비해 느리고, 힘도 많이 드는 배영을 많이 쓰다 보니 근육에 무리가 갔다. 사이클과 육상 기록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어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 지난해 사전 대회까지 두 번이나 센강에서 살아남았으니 만족한다"며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긴 하지만, 물이 생각보다 맑고 투명했다"며 웃었다.
양팔 없이도 센강을 건넌 장애인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국가대표 김황태(47)가 밝게 웃었다.
김황태는 지난 2일(한국시각)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PTS3 등급 경기에서 1시간 24분 01초를 기록, 11명 중 10위를 차지했다.
수영 750m, 사이클 20㎞, 육상 5㎞ 코스를 달린 그에게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센강을 헤엄쳐 나오는 것만으로도 목표를 이뤘기 때문이다.
김황태는 "사전 연습 때는 유속이 느렸는데, 본 경기 때는 더 빨랐다. 모든 영법을 써봤는데 답은 배영이었다"고 말했다. 자유형과 평영에 비해 느리고, 힘도 많이 드는 배영을 많이 쓰다 보니 근육에 무리가 갔다. 사이클과 육상 기록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어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 지난해 사전 대회까지 두 번이나 센강에서 살아남았으니 만족한다"며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긴 하지만, 물이 생각보다 맑고 투명했다"며 웃었다.
김황태는 2000년 8월 전선 가설 작업을 하다가 고압선에 감전돼 양팔을 잃었다. 일 년 동안 절망에 빠져 있다 일어선 그는 패럴림픽 출전을 목표로 육상, 노르딕스키,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을 섭렵했다. 그러다 트라이애슬론이 정식 종목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시작했다.
그에게 가장 큰 힘을 준 사람은 핸들러(경기 보조인)이자 아내인 김진희 씨다. 핸들러는 종목과 종목 사이 경기복 환복과 장비 착용 등을 돕는다. 트랜지션(다음 종목 준비 과정) 시간도 경기에 포함된다.
김진희 씨는 "자연스럽게 보호자로 같이 지내면서 핸들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받았다. 같이 있으니까 심리적으로도 안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황태는 "24시간 같이 있으니까 하루에 열댓 번 다툴 때도 있다. 하지만 잘 되려고 하는 거니까 이해하고 화해한다"고 밝혔다.
그에겐 조력자가 있었다. 비장애인 트라이애슬론 1세대 출신인 김정호 감독이 힘을 보탰다. 김 감독은 사전 연습 때 김황태와 함께 센강을 헤엄쳤다. 김황태는 "나는 한국인 최초로 센강에서 헤엄쳤고, 감독님은 두 번째로 헤엄친 사람"이라며 웃었다.
김황태의 바람은 한국 트라이애슬론 패럴림픽의 역사가 그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김황태는 "태권도 주정훈 선수가 도쿄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뒤 선수가 많이 유입됐다"며 "올해 5월 대한장애인트라이애슬론연맹이 창립됐는데 아직 정가맹단체가 아니다. 나를 보면서 많은 선수들이 도전했으면 한다. 지원도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패럴림픽 도전을 마무리한 김황태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늘릴 계획이다.
김황태는 패럴림픽 기간 경기에 집중하느라 선수촌에서만 지냈다. 출국을 앞두고서야 아내, 스태프들과 함께 간단하게 파리 시내를 둘러봤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싶다"며 웃었다.
그에게 가장 큰 힘을 준 사람은 핸들러(경기 보조인)이자 아내인 김진희 씨다. 핸들러는 종목과 종목 사이 경기복 환복과 장비 착용 등을 돕는다. 트랜지션(다음 종목 준비 과정) 시간도 경기에 포함된다.
김진희 씨는 "자연스럽게 보호자로 같이 지내면서 핸들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받았다. 같이 있으니까 심리적으로도 안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황태는 "24시간 같이 있으니까 하루에 열댓 번 다툴 때도 있다. 하지만 잘 되려고 하는 거니까 이해하고 화해한다"고 밝혔다.
그에겐 조력자가 있었다. 비장애인 트라이애슬론 1세대 출신인 김정호 감독이 힘을 보탰다. 김 감독은 사전 연습 때 김황태와 함께 센강을 헤엄쳤다. 김황태는 "나는 한국인 최초로 센강에서 헤엄쳤고, 감독님은 두 번째로 헤엄친 사람"이라며 웃었다.
김황태의 바람은 한국 트라이애슬론 패럴림픽의 역사가 그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김황태는 "태권도 주정훈 선수가 도쿄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뒤 선수가 많이 유입됐다"며 "올해 5월 대한장애인트라이애슬론연맹이 창립됐는데 아직 정가맹단체가 아니다. 나를 보면서 많은 선수들이 도전했으면 한다. 지원도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패럴림픽 도전을 마무리한 김황태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늘릴 계획이다.
김황태는 패럴림픽 기간 경기에 집중하느라 선수촌에서만 지냈다. 출국을 앞두고서야 아내, 스태프들과 함께 간단하게 파리 시내를 둘러봤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싶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