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이스라엘 신와르 검거를 위한 특별부대도 운영
전자통신 안쓰고, 인적 네트워크로만 연락
“은둔하면서도 군사 작전, 평화협상 지휘” 이스라엘 관리 좌절시켜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5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쫓고 있는 하마스 지도자 야히아 신와르가 체포나 죽음을 모면하는 능력이 있어 포착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이 군사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1월 31일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신와르가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칸유니스의 한 터널을 급습했다.
하지만 신와르는 서류 더미와 100만 달러에 달하는 이스라엘 화폐 세켈을 남기고 며칠 전 사라진 뒤였다.
지난해 10월 테러 공격 후 유령이 된 신와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추종자들에게 메시지를 거의 공개하지 않아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에 대한 단서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 관리들은 신와르가 오래 전에 전자통신은 포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철저히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조직과 연락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과거 하마스 지도자나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들도 사용한 수법이다.
하지만 신와르가 미국과 이스라엘 관리들을 더욱 좌절시키는 것은 그는 빈 라덴의 마지막 시기처럼 은둔만 한 것이 아니라 군사 작전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타르 도하에서 휴전 협상에 참여한 하마스 대표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와르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61세 신와르는 7월 31일 이스마일 하니야가 살해된 지 며칠 후 이 단체의 최고 정치 지도자로 선언됐다. 이는 그가 여전히 하마스의 광범위한 전략을 지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국내 정보 기관인 신베트 본부 내에는 신와르 검거를 위한 특수 부대를 설치했다. 미 정보기관은 신와르의 통신을 가로채는 임무를 맡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신와르를 죽이거나 잡는 것은 전쟁에 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와르는 지난해 10월 테러 이전 가자지구에서 큰 존재감을 보였다.
언론 인터뷰를 하고, 군사 훈련을 주재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을 묘사한 쇼에서 상을 수여하기 위해 TV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7일 공격전의 섬뜩한 전조였다고 NYT는 전했다.
이스라엘 인질들에게 연설도
이스라엘 정보부 관계자들은 신와르가 최소한 전쟁 초기 6개월 동안 가족을 데리고 다녔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10월에 촬영된 영상을 공개했는데 영상에는 신와르가 가자지구의 지하 터널을 걷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신와르는 여전히 휴대전화와 위성 전화를 사용했다. 이는 터널의 셀룰러 네트워크 덕분에 가능했으며, 때때로 도하의 하마스 관리들과 통화를 나누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스파이 기관은 이러한 통화 중 일부를 감시할 수 있었지만 그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었다.
지난해 11월 풀려난 이스라엘 인질은 10월 7일 공격 직후 신와르가 많은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연설한 내용을 설명했다.
인질의 진술에 따르면 신와르는 이스라엘 감옥에서 수년간 배운 히브리어로 그들에게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안전하며 아무런 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지하에 숨은 모든 하마스 요원이나 신와르가 건강상의 이유로 가끔 터널에서 나와야 하지만 이스라엘군의 행방에 대해 정보를 가지고 있어 때때로 발각되지 않고 땅 위로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또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였고, 국방부는 이스라엘 방위군에 가자지구에서 임박한 전쟁에 대해 조언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특수작전부대를 파견했다.
신와르는 1980년대 하마스의 창립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에게 영입됐다.
그는 하마스의 내부 보안부대 책임자가 되었는데 이 부대는 이스라엘 당국에 협력한 혐의가 있는 팔레스타인인은 물론 신성모독을 저지른 사람을 찾아 처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수년 동안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2011년 10월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 군인 길라드 샬리트와의 교환의 일환으로 1000명 이상의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풀려났다.
‘헤즈볼라의 유령’은 지난달 31일 사망
그는 1983년 12월 베이루트 미 대사관 폭탄테러 사건 이후 미국이 40년 넘게 추적했다.
그는 이름이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그가 살던 아파트 주변 주민들도 그의 얼굴을 본 적 없다며 “유령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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