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시스] 김동영 기자 =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지하주차장 내 스프링클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아파트 관계자가 스프링클러의 작동을 막은 기록이 확인되면서 형사 입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0일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화재수신기 제조사로부터 로그 기록을 복구해 확인한 결과, 화재 당일 오전 6시9분께 수신기로 화재 신호가 전달됐으나 아파트 관계자에 의해 ‘준비작동식밸브 연동 정지 버튼’이 눌러진 기록이 확인됐다.
이후 정지 버튼을 누른 5분만인 오전 6시14분께 준비작동식밸브 연동 정지 버튼은 해제됐지만, 앞선 오전 6시12분께 화재로 인해 중계기 선로가 고장 나면서 결국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준비작동식밸브 연동 정지 버튼을 누른 경우에는 화재 신호가 정상 수신되더라도 스프링클러가 작동이 되지 않는다.
스프링클러는 화재 발생 시 불길이 확산되기 전에 진압을 하거나 억제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임의로 스프링클러의 작동을 멈춘 아파트 관계자의 형사입건이 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고의로 조작하거나 비활성화한 경우, 소방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18년 8월21일 인천 남동구 세일전자 공장 4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근로자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당시 경비원은 사이렌과 안내방송이 나오는 화재경보기를 작동되지 않게 해 근로자들의 대피를 늦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에도 프리액션 밸브 기동신호는 전송됐으나, 실제 가동되지 않아 스프링클러가 물을 분사하지 않았다.
경비원은 경찰에서 “화재경보기가 평소 잦은 오류를 일으켰다”며 “당시에도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한 것으로 판단하고 전원을 끈 뒤에 실제 화재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결국 경비원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아파트 관계자가 스프링클러 작동을 막게 된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아파트 관계자를 입건한 상태는 아니다”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은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아파트 관리 관계자가 형사 입건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배상훈 전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아파트 관계자가 소방시설을 임의로 조작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며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과 교수는 “화재수신기의 오작동으로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준비작동식밸브 연동 정지 버튼을 누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결국 아파트 관계자 개인의 판단으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만큼 형사상의 처벌을 피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1일 오전 6시15분께 인천 서구 청라동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흰색 벤츠 전기차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다 이내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8시간20분 만에 완전히 꺼졌다.
화재 당시 주차장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가 아파트 단지 전체를 뒤덮으면서 주민 103명이 옥상 등으로 대피했고, 135명이 소방대원에 구조됐다.
또 영유아를 포함한 입주민 22명이 연기를 흡입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소방 당국은 이 화재로 87대의 차량이 전소되거나 불에 탔고, 793대가 그을음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경찰 등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배터리 관리장치'(BMU-Battery management unit)를 차체에서 분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감정을 의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