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6개월…"치료 하향 평준화·연구 경쟁력 빨간불"

기사등록 2024/08/08 05:01:00

최종수정 2024/08/08 07:24:51

암 환자, 수술 건너뛰고 항암·방사선 치료

'마지막보루' 내과 치료 하향 평준화 우려

'새 치료기회' 임상연구 환자 보느라 못해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9월부터 수련을 시작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시작된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2024.07.22.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9월부터 수련을 시작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시작된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2024.07.2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 공백 사태가 6개월째 지속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 의료 서비스의 질적 하락과 임상 연구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1만여 명의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지만 복귀율은 저조하다. 보건복지부가 '수련특례'를 내걸었지만 지난달 31일 마감한 하반기(9월 수련) 전공의 모집에 응한 비율은 1.4%(104명)에 그쳤다. 복지부는 오는 9일부터 하반기 전공의 추가 모집에 나서기로 했지만 사직 전공의들이 병원에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사태 장기화에 따른 인력 부족으로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 최악의 경우 생명을 잃거나, 진료의 하향 평준화로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두경부외과 A 교수는 "이번 사태로 마취 담당 인력이 부족해 두경부암 환자 수술 건수가 절반 가량 줄었다"면서 "진행성 두경부암 환자가 수술을 받지 못한 채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로 넘어가는 사례들이 점점 더 늘고 있어 치료 성적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술 후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생존률이 절반 가량에 달하는 환자가 의료 역량의 핵심인 인력 부족으로 생존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경부외과는 먹고 말하고 숨쉬는 데 필요한 입·코·목·혀 등에 생기는 암 치료 및 수술과 응급 수술을 담당한다. 응급·중증질환이 대부분이고 수술도 고난도로 6~12시간 가량 장시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두경부외과는 1년 365일 응급콜과 수술 대기 상태로 업무 강도는 센 반면 수가는 턱없이 낮고 고난도 수술로 의료 소송도 많아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했는데, 이번 사태로 의료 역량이 크게 저하됐다.

전공의들은 주로 근무해온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도 '필수의료의 마지막 보루'인 내과(혈액·종양·심장내과) 의료진들을 중심으로 '치료 하향 평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상당수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사태로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깨진 데다 의사에 대한 적대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굳이 전문의를 할 필요가 없다며 개원가(동네 병·의원)로 향하고 있다.

다른 대학병원 B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내과 안에서도 중증 환자가 많고 밤새 당직을 서는 혈액·종양·심장내과 교수들의 피로가 극에 달한 상태"라면서 "종양내과 환자들은 대부분 4기여서 외래에서 항암 치료를 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4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사직 전공의들을 위한 근골격계 초음파 연수강좌를 찾은 사직 전공의들이 강좌를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4.08.04.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4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사직 전공의들을 위한 근골격계 초음파 연수강좌를 찾은 사직 전공의들이 강좌를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4.08.04. [email protected]
하지만 필수의료 전공의 복귀는 미미한 수준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나선 25개 과목 중 6개 과목의 지원 인원은 전국 수련병원에서 0명이었다. 흉부외과는 전국에서 지원자가 전무했다. 필수의료인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도 지원율은 0~1%에 불과했다.

B 교수는 "응급 환자가 몰리는 주말이 특히 힘들다"면서 "그런데 예전에는 힘들어도 보람이 있다며 종양내과를 선택했던 전공의들이 이젠 내분비내과로 전공을 변경해 개원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태가 길어지면서 국내 암 임상 연구 등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국내 임상 연구 수준은 전 세계 임상 시험 등록 건수 5위에 오르는 등 글로벌 상위 수준이지만 의정 갈등으로 의대 교수들은 암이나 신약 개발 연구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종양내과 C 교수는 "임상 연구는 단순히 연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새로운 치료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의정 갈등으로 병동·외래 환자는 물론 중환자까지 다 봐야 하니 연구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5~10년 전만 해도 임상 데이터의 신뢰도가 떨어졌던 중국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어 위기감이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전공의 의존도를 낮춘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전공의들이 상당수 돌아오지 않는다면 임상 연구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한다 하더라도 전공의보다 인건비가 비싼 전문의들은 진료 실적 압박이 있어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전공의들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입원·응급실 환자 등을 돌보며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해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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