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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만나 줘' 교제살인…"감시·의심하는 강압적 통제, 범죄로 처벌해야"

기사등록 2024/07/10 16:38:55

최종수정 2024/07/10 18:12:52

교제살인 전 '강압적 통제'라는 전조증상

영국·아일랜드 등 통제행위 범죄로 처벌

호주, '반려동물 학대'도 통제행위에 포함

"규정 만들어 피해자 보호조치 실시해야"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강남역 인근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의대생 최모씨가 지난 5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2024.05.14. ks@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강남역 인근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의대생 최모씨가 지난 5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2024.05.1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김남희 기자 = #지난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명문대 의대생이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 의대생은 피해자를 죽이기로 마음 먹고 흉기와 청테이프를 준비하는 계획 범죄로 드러났다.

#같은 달 강남구 한 오피스텔에서도 60대 남성이 교제하던 여성과 그의 딸을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됐다. 남성은 피해자 가족이 교제를 반대하고 끝내 이별을 통보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6월에는 경기 평택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50대 남성이 이별을 요구한 여성의 얼굴 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다 체포됐다.

최근 헤어지자는 연인을 살해하는 '교제 살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범행 전 폭언과 통제 같은 '강압적 통제' 성향을 보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토킹이 범죄로 규정됐듯 이런 행위들을 범죄화해 수사기관이 개입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교제폭력방지법에 '정서적 학대' 반영해야

교제살인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없다. 한국여성의전화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449명(살인 138명, 살인미수 311명)에 달한다.

자녀와 부모 등 주변인 119명을 포함하면 살인·살인미수 피해자는 568명으로 늘어난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건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제살인은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전 폭행, 협박과 같은 '사전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교제폭력을 막을 근거법이 부족해 접근금지 조치 등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실제로 교제폭력 신고가 2017년 3만6267건에서 2023년 7만7150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한 데 비해, 같은 기간 구속률은 3.5%에서 2.2%로 감소했다.

현재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형법상 폭행 및 협박죄로 신고할 수 있다. 그러나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돼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신체적 상해를 입어야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점도 문제다. 여성가족부가 2022년 발표한 '가정폭력 피해실태 분석 및 지원 방안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면담 조사에서 "출동한 경찰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체적 폭행이 없으면 가정폭력으로 치지 않는다"는 경험을 진술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연구관은 10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거절살인, 친밀한 관계 속 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정서적 학대와 통제가 극심해도 직접적인 폭력이 없다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며 "단순히 교제관계처벌법을 새롭게 만드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친밀성'이 동반된 범죄 특성을 반영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심하고 감시하고…교제폭력의 본질은 '통제'

이별 통보 후 살해당하는 '거절 살인'은 가해자의 극심한 통제·지배 성향과 관련성이 깊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파트너에 의한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피해자의 87.7%가 통제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행방을 추적하고 감시하고 의심하는 태도 ▲타인과의 교류나 행동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태도가 확인됐다.

그러나 현행법에서는 이 같은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 사진을 찍어보내라"거나 "이성을 만나지 말라"고 하는 것이 폭력·협박이나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2015년 중법죄법을 개정해 신체적 피해가 없는 통제 행위도 범죄로 규정했다. 최소 두 번 이상 피해자에게 곧 폭력이 사용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경우 범죄로 본다. 범죄가 인정되면 5년 이상의 징역형, 벌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아일랜드도 2019년부터 강압적 통제 행위를 범죄화한 법을 시행 중이다. 범죄 인정과 처벌은 영국과 유사하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는 2022년 강압적 통제법을 통과시켜 이달부터 시행 중이다. 강압·강요를 하거나 모욕·수치심을 주는 행위, 친구·가족으로부터 고립시키는 행위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경우도 학대 행위에 포함시켰다.

허 조사관은 "우리나라도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해 통제 행위를 범죄화하는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제 행위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가장 큰 위험요인인 만큼 해외법을 참고해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교제폭력과 가정폭력은 반의사불법죄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제언에 전지혜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 스토킹정책계장은 "처벌 조항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수사기관에서 가해자의 통제 행위를 강력 범죄 전조증상으로 보고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이 '스토킹행위'와 '스토킹범죄'를 구분해 범죄에 이르기 전 부터 경찰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강압적 통제 행위'가 나타났을 때 접근금지 등 피해자 보호조치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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