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복귀 전공의도 '면죄부'…행정처분 없어
전공의 출근율 7.9%…일부 병원 복귀 기대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9월 수련 참여 전망
의료계 요구 받아들이며 대화 가능성 나와
"제자 위한 집단행동"…교수들 명분 없어져
[세종=뉴시스] 박영주 구무서 정유선 기자 =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강조해 온 '법과 원칙'을 깨고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의 행정처분 철회를 결정한 배경에는 소모적인 의·정 갈등의 종지부를 찍고 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복귀를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병원을 이탈한 후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전공의 임용 시험 지침'을 완화해 사직한 전공의들이 오는 9월 같은 연차와 전공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기로 했다.
지난달 4일 복귀한 전공의들에 이어 미복귀 전공의들에게도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심지어 복귀한 전공의들에게는 행정처분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이었는데, 이날 발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모든 전공의의 행정처분 '철회'를 결정했다. 의료 공백이 완화돼도 향후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지 다섯 달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복귀도, 사직도 하지 않은 채 버티기에 나서자 정부가 전공의들의 복귀율을 높이기 위한 마지막 협상카드를 제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복지부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211개 수련병원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1만3756명 중 1092명(출근율 7.9%)만 근무하고 있다. 정부가 수련병원을 상대로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철회를 발표하기 직전인 6월3일과 비교하면 겨우 79명 늘었다. 사직서가 수리된 레지던트도 0.6%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행정처분을 풀고 '전공의 임용 시험 지침'을 개정하면 전공의 일부는 병원에 복귀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현행 지침상 수련 도중 사직한 전공의는 1년 이내 같은 전공이나 연차로 복귀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현재 사직한 전공의의 경우 다른 병원 같은 전공, 같은 연차로 복귀하려면 내년 9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마저도 자리가 나지 않으면 2026년 3월까지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공의 임용 시험 지침을 완화하면 전공의 이탈로 타격이 큰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다른 병원 사직 전공의들이 9월 수련에 참여할 거라는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범의료계 대책 기구인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전공의 단체 등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행정처분을 중단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는 의료계가 오랫동안 요구했던 사안이다.
다만 정부는 "행정처분 취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행정법상 행정행위 '취소'와 '철회'는 효력이 소멸하는 것은 같지만 그 근거가 다르다. '취소'는 해당 행위에 위법 또는 부당한 하자가 있는 경우, '철회'는 적법한 행위이지만 공익상 필요하다는 인정되는 경우 등에 행위 주체가 내리는 조치이다.
정부가 전공의들의 행정처분을 '취소'할 경우에는 그동안 정부의 행정명령이 위법하다고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이럴 경우 그동안 정부가 내렸던 각종 명령이 정당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의료계가 소송전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미복귀 전공의들의 행정처분도 철회하면서 복귀하는 전공의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부 전공의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복귀한 전공의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했다. 이에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들의 행정처분도 풀어 복귀하는 전공의들이 더 이상 '배신자'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명분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포함됐다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의대 교수들은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집단 휴진에 나섰다. 의대 교수들의 요구대로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집단행동에 나설 명분이 없다는 목소리다.
다만 정부의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철회 결정이 그동안 수차례 강조해 왔던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조규홍 장관은 "6월4일 행정명령 중단에도 불구하고 복귀 또는 사직하는 전공의가 많지 않아 의료 공백이 지속된 데다가 환자단체에서 전공의들의 조기 복귀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주셔서 정부가 결단하게 됐다"며 "전공의들이 그동안 주 80시간에 이르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고생했고 아직 수련생 신분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정부가 비판을 각오하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정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부작용이 많을 것 같다. 결국 의사 예상대로 간 게 아니냐"면서 "형평성 문제만 더 불거질 것이다. 다음에는 더더욱 의사 증원 등과 관련해 의사단체의 허락을 다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우려했다.
다만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이미 복귀한 의사와의 형평성 얘기를 하지만, 이들 역시 대부분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정부가 원칙을 깨지 않고 그대로 (미복귀 전공의들 대상으로) 행정처분을 강행했다면 사회적 비난이 정부에게 쏠렸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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