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깡통전세'…집주인 보증금 33억 '꿀꺽'
[부산=뉴시스]권태완 기자 = 부산시가 힘들게 정착시킨 외지 청년이 단란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을 안고 찾은 첫 주택이 '깡통 전세'가 돼 버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임대인 최모(30대)씨 등 3명이 오는 17일 오전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인 A(20대)씨는 지난 2022년 부산시의 '청년 귀환 사업'을 통해 부산의 한 직장에 취직하게 됐다.
2021년 행정안전부의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 공모에 선정된 부산시는 청년인재들이 부산에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부산 청년 귀환 사업'을 진행했었다.
이 사업은 부산을 떠난 청년들 중 부산에 다시 돌아올 의사가 있는 청년에게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 연결을 지원해준다. 또 참여 기업에는 인건비를, 청년들에게는 장기근속 수당을 지급했다.
타지에서 태어난 A씨는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인연이 있었고, 졸업 이후에는 친형과 함께 경주에 거주하다가 시의 '청년 귀한 사업'을 보고 부산 정착을 결심했다.
A씨는 지난 2022년 5월 청년 전세대출을 통해 1억원을, 졸업 이후 모은 돈 3000만원을 털어 부산에 전셋집을 장만했다.
이후 A씨는 올해 1월 초 여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릴 꿈을 꿨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불과 2주 뒤에 그가 사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통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집주인인 최씨는 부산의 한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지인의 제안을 받아 '무자본 갭투자'에 나섰다. 그는 수영구에 위치한 매매가 52억원에 달하는 오피스텔 건물을 자기 자본 없이 은행 대출과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으로 매입했다.
그 뒤 최씨는 총 28차례에 걸쳐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 32억9450만원을 챙겼고, 이 돈은 고스란히 수영구의 새로운 오피스텔 건축비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계약서에 특약으로 보증보험 가입 조건이 있었지만 결국 효력이 하나도 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며 "내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신혼집도 구하지 못하고, 모든 걸 다 잃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 귀환 사업을 통해 고향을 떠나 부산에 정착하게 됐는데, 전세사기를 당하고 나니 부산의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며 "사기죄의 최대 형량이 15년이라고 들었다. 한 사람이 1억원을 벌기 위해선 최소 5~10년이 걸리는데 저희 건물 피해액이 단순 3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청년들이 300년이라는 세월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임대인에게는 최대 징역 15년이라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울산에 거주하는 부모님이 몸이 불편해져 더 자주 왕래하고 취업도 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부산에 새로 터를 잡은 B(30대)씨.
B씨도 지난 1월 우편함에 꽂혀있던 경매통지서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민사소송을 통해 전세보증금 지급 결정 판결을 받았지만, 이 돈을 최씨로부터 받아낼 수 있을지는 막막한 상황이다.
B씨는 "임대인의 집안이 건설업을 오래 해 돈이 많고, 오피스텔 앞에 주차된 고급 스포츠카가 임대인의 차량이라고 설명했다. 공인중개사도 해당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고 안심시켰다"면서 "'근저당이 조금 있지만 요즘에는 근저당이 없으면 아예 건물을 지을 수 없다'라거나 다른 건물을 소개할 땐 위험한 깡통전세 건물임을 알려주는 등 안심시켰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많은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수감되면 '보증금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며 "민사소송을 통해 지급 결정 명령 판결을 받았지만, 채권을 추심하려면 또 새로운 소송을 진행하고 돈이 들어서 고민이 된다"고 호소했다.
어렵게 부산으로 오게 한 젊은이들이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부산시가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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