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하이재킹'(6월21일 공개)은 심플하다. 여객기가 괴한에 납치되고 조종사가 승객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스토리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지 않은 데다가 이야기 구조도 단순하다. 1971년에 일어난 '대한항공 F27 납북 미수 사건'을 극화하면서 실제 사건의 사실 관계를 대부분 영화로 가져왔으며, 비행기가 납치됐던 1시간10분을 러닝 타임 안으로 거의 그대로 끌고 들어오기도 했다. 여기서 실화를 재구성한다거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특별한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화적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은 팩트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캐릭터일 것이고, 영화적 매력이 발산돼야 할 부분은 재난 상황의 긴장감을 풀어내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이재킹'은 이 부분에서도 이렇다 할 도전을 시도하지 않고 계속 심플하게 남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이재킹'이 가장 공을 들이는 건 역시 비행기 액션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태인(하정우)이 전투기 조종사로서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굳이 긴 시간을 들여 보여주는 건 앞으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암시한다. 역시나 김성한 감독은 극중 태인이 보여주는 수 차례에 걸친 곡예 비행을 납치 후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활용하며, 이 묘기 비행의 감각을 관객이 실감할 수 있게 연출하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비행기 액션의 완성도는 크게 흡잡을 데가 없어 보인다. 다만 앞서 재작년에 나온 더 큰 규모 비행기 재난 영화인 '비상선언'에서 이미 맛봤고, '탑건:매버릭'으로 극한의 경험을 한 관객이 '하이재킹'이 담아낸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새로울 게 없는 체험형 액션에 다시 충격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캐릭터다. 두 주인공 태인과 용대(여진구)는 시종일관 단선적이다. 이야기가 단순한데 캐릭터에도 굴곡이 없다 보니 영화는 거의 모든 대목에서 관객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돈다. 다시 말해 태인이 추구하는 가치는 언제나 옳고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어떤 변화도 어떤 새로운 선택도 하지 않기에 좋은 캐릭터는 될 순 없다. 용대의 과거사는 안타깝지만 그 역시 어떤 새로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좋은 캐릭터가 되지 못한다. 물론 두 인물의 복지부동은 의도된 설정일 것이다. 태인과 용대가 끝내 맞닥뜨린 운명은 이데올로기 이분법이 무고한 사람과 무고했던 사람 모두를 사회에서 내몰아 결국 절멸해버린다는 메시지와 호응한다. 그러나 이런 스토리를 부러 추출해내기엔 재난의 스펙터클 등 다른 요소들에 할애한 시간이 너무 길다.
'하이재킹'은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남과 북 어느 쪽도 아닌 하늘 위에서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게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괴물에 의해 어디로도 내리지 못하고 공중을 떠돌다 결국 추락해버리고마는 바로 그 그림 말이다. 어쩌면 풍성해질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는 결국 재난 스릴러로 가는 길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단순해지고만 듯하다. 이 선택 자체를 비난할 순 없다. 그러나 오락적인 요소에 온전히 집중하지도 못하고 메시지 역시 다 내버리지 못한 채 중간 지점에서 적절히 타협한 듯한 이 영화를 적당한 걸로는 도무지 만족하지 않는 요즘 관객이 좋아해줄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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