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하종민 기자 = 경기장 밖은 지켜야 할 규칙이 없다. 심판도 없고 룰도 없으니 반칙과 꼼수가 난무해도 딱히 뭐라 할 수도 없다.
참가자들끼리의 승부라기보다 싸움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싸움이 끝난 후에도 서로의 주장, 입장만 가득 늘어놓다가 승자와 패자 없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어정쩡한 상태로 남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세기의 이혼'으로 묘사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의 장외설전은 우려스럽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7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2심 판결에 치명적 오류가 있다"며 "재산 분할에 관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재산분할 판단에 영향을 미친 대한텔레콤 주식가치 산정이 잘못됐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기자들 앞에 잘 나서지 않던 재벌 총수가 법정이 아닌 장외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한 것이다. 그는 "한 번은 여러분 앞에 나와 사과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돼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지만, 기자회견 시간의 대부분을 재판부 판단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썼다.
그의 주장처럼 주식가치 산정에서 있었던 수치 오류가 '치명적 오류'인지, 나아가 판결을 뒤바꿀만한 것인지는 법원에서 따지면 될 일이다. 최 회장의 기자회견이 판결 '흠집 내기' 목적으로 읽히는 이유다.
서울고등법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만났던 많은 법관들은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입을 모았다. 판결문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이 곧 정의가 된다는 자부심이기도 했다.
재판부의 설명대로 수치 오류에 불과해 '경정(판결문 일부 수정)' 결정했으면 거기서 끝났어야 한다.
경정 결정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지만 '판결 이유는 판결문을 보라'고 하면 되고, 법리적 쟁점 사안은 상고심인 대법원에서 따지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서울고법 재판부는 경정 결정에 대해 4페이지짜리 설명자료를 내놓으면서 장외에서 여론전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설명자료를 통해 "2009년 11월 3만5650원은 중간 단계의 가치로 최종적인 비교 대상이나 기준 가격이 아니다. 이를 통하면 최 회장과 선대회장의 기여는 160배와 125배로 비교해야 한다"며 판결문이 아닌 방법으로 장외에서 상대방 논리에 반박했다.
그동안 재판부가 경정 결정에 설명자료를 낸 적이 매우 이례적인 것을 고려할 때 이번 설명자료 배포가 얼마나 소구력을 가질 지 의문이다. 앞으로 법원의 모든 경정 결정에 대해서도 매번 설명자료를 통해 설명할 것인지도 묻고 싶다.
장외설전이 반복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은 적지 않다. 대법원 판단에 예단을 줄 수 있고, 판결 후 불복도 우려된다.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강호는 "법리적 판단은 오로지 이 재판에서 제시하는 증거 위에서만 해야 한다"고 했다. 상고심 재판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경기장 밖 싸움을 멈추고, 경기에 나설 준비에 집중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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