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만의 연극 복귀…알코올 중독 재벌 3세 연기
[서울=뉴시스]강주희 기자 = "이 시간에 누워서 넷플릭스 볼 시간인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러다 막상 무대에 오르니 '익숙하게라도 정신없이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해내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1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전도연(51)은 27년 만에 돌아온 연극 무대의 매력을 이같이 밝혔다. '벚꽃동산'은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원작을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전도연은 술과 남자에 취해 인생을 탕진하는 재벌 3세 송도영을 맡았다.
전도연은 매사에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송도영을 연기하지만 처음 대본을 봤을때 송도영이라는 캐릭터가 납득이 안 됐다고 했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 상처를 딸들에게 전과시키고 그걸 다 드러내는 것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관객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연출인) 사이먼은 '연기를 하다 보면 캐릭터가 만들어질 테니 송도영의 맑은 영혼을 표현하라'고 하더라고요."
이해하기 어려운 송도영을 받아들이는 길은 결국 '몰입이었다. 전도연은 "살다보면 부모의 아픔과 상처를 결국 알 수 밖에에 없지 않냐"며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굉장히 자극적으로 느껴지고, 순간적으로 봤을때는 부정하고 싶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자신은 모르지만, 제 안의 어떤 한 부분이 도영과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며 "예전에 이창동 감독님께 '밀양'에 왜 저를 캐스팅했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감독님께선 모성 본능이 뛰어나 보여서라고 답하셨다. 저조차 알 수 없는 부분을 끄집어내 주는 감독이 좋은 감독인 것 같다"고 했다.
연극 무대 복귀작으로 '벚꽃동산'을 택한 이유는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의 공이 컸다. "'벚꽃동산' 원작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거절하려고 생각 했었어요. 그런데 작품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다고 해서 과연 사이먼이 보는 한국적인 것이 뭘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어요."
그의 기대처럼 '벚꽃동산'은 120년 전 러시아에서 2024년 서울로 완벽하게 옮겼다. 전도연은 "무대를 보고 굉장히 한국화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가 첫 등장부터 입는 트레이닝복과 트렌치 코트만 봐도 굉장히 현대적인 작품이라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사이먼의 일명 '쪽대본'은 새로운 자극이 됐다고 했다. 전도연은 "독특한 작업 방식이 처음에는 굉장히 당혹스러웠다"면서도 "사이먼은 배우들이 불안정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가며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기를 바란 것 같다. 받아들이기 쉬운 방식은 아니지만 흥미롭고 자극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전도연은 실수와 만회를 반복하며 성장하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성격이 완벽주의자라 실수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한다"며 "(무대에 오르면서) 두려움이나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들을 겪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남은 공연에서도 실수하겠지만 그만큼 만회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저는 그렇게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성장하고 싶어요. 두려움을 받아들이면서 저에 대해 점차 더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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